[오늘의 영화] '사춘기 구미호'의 사랑과 모험

천년여우 여우비 

EBS TV 오전 10시

우리네 전설 속에서 구미호는 남자를 홀릴 만한 미모를 가진 요염한 여자로 변신하거나 살아있는 인간의 간을 먹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니 요물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이성강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에 등장하는 주인공 여우비 역시 변신술을 활용할 줄 알고 인간의 영혼을 탐내는 마음을 내밀히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미호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다른 이야기 속 구미호들에 비해 인간과 친근해질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제 100살, 구미호의 나이로 보면 사춘기에 접어든 여우비는 갑자기 투정도 부리고 이래저래 의문도 많이 든다. '천년여우 여우비'는 이 10대 청소년 같은 구미호의 사랑과 모험 이야기를 그린다.

여우비는 100년 전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요요'들과 함께 산 속에서 살고 있다. 오랜 세월을 타향에서 보낸 요요들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자기네 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선을 수리해 시험 비행을 하지만 '말썽요요'의 실수로 계획은 엉망이 되고 만다. 친근한 이미지 속에서 펼쳐지는 여우비의 이야기를 보면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느꼈을 것은 아마도 인물들과의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풀어놓는 데 보다 섬세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꽤 많은 인물들을 보여주고 그런 만큼 이야기도 여러 갈래로 새 나간다. 그럼에도 여기서 창작자의 선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 속 많은 인물들, 예컨대 외모는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지만 인간은 아닌 여우비나 학교에서 따돌림 받아 극기 훈련을 받으러 온 아이들, 심지어는 그림자 탐정까지도 모두 소외되고 외로운 존재들이고 영화는 그런 이들을 품으려 한다. 다소 비틀거리는 내러티브에서도 결국 여우비가 겪는 안타까움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건 영화가 지닌 그런 마음 때문일 것이다. 감독 이성강. 2006년. 85분. 컬러. ★★★ (5개 만점)

착한 그녀와 무서운 그녀 

MBC TV 오전 9시40분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 그런 여자가 나타났으면 좋겠다"라고 외치던, 대학을 7년이나 다녔건만 아직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 구창(봉태규)에게 예쁜 여자친구(정려원)가 생긴다. 그런데 이 여자친구는 너무 엉뚱하게 순진하다가도 어느 때는 욕설을 마구 내뱉고 폭력을 함부로 휘두르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영화의 제목이 '두 얼굴의 여친'인 것은 그래서이다. 그녀 안에는 한 사람이 사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다중인격이란 소재는 스릴러 장르에서 주로 활용해 왔지만 '두 얼굴의 여친'은 그것을 코미디로 끌고 들어온다. 그러나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옳지 않다. 영화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울음 범벅의 멜로드라마로 방향을 선회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구창이 '한 여자 안의 두 인물과 어떻게 지내는가'하는 문제에서 '그녀들이 사라지는 걸 앞두고 사랑을 어떻게 잘 잊을 수 있을까'하는 문제로 초점을 이동시킨다. 비록 이런 결합이 훌륭히 이뤄졌다고 보긴 힘들지만 여하튼 봉태규와 정려원이 발했던 매력은 영화가 끝나도 남는다. 감독 이석훈. 2007년. 117분. 컬러. ★★☆ (5개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