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극장가, '충무로 선배'들이 승리했다

2008년 추석 연휴 극장가의 흥행 승자는 '신기전(神機箭)'. 조선 시대 세계 최초의 다연발 로켓을 소재로 한 이 대중영화는 15일까지 230만여 명을 모아 같은 날 개봉한 할리우드 뮤지컬 '맘마미아'(약 200만 명)의 거센 추격을 제쳤다.

주역은 두 명의 중견(中堅). 김유진(58) 감독, 이만희(54) 작가다. 16일 광화문의 복합문화공간 C스퀘어에서 이 '중견 콤비'를 만났다. 우락부락 사내답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외모의 감독은 "요즘 젊은 관객들은 내 이름을 듣고 젊은 여자 감독인 줄 안다"며 우스개를 던졌다.

사실 젊은 감독과 더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지배하고 있는 최근 10년의 충무로에서 이 '50대 단짝'의 성취는 극히 예외적. 관객의 절대다수인 18~25세의 취향과 감성을 이유로 중견은 거의 '퇴출' 분위기였다. 작가는 "어쩌면 우리는 충무로 현역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편에 속할 것"이라며 "젊은 감독과 작가의 신선한 기운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충무로가 너무 조로(早老)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했다. 감독은 "영화는 스포츠처럼 (젊은) 체력을 요구하는 장르가 아니다. 드라마와 영상의 리듬감은 감각뿐만 아니라 경륜에서도 나오는 것"이라고 특유의 덤덤한 말투로 덧붙였다.

물론 모든 장르에서 이들 콤비가 '경륜'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아무래도 삶을 바라보는 나이도 있고, 소재를 잡을 때 의미를 가진 쪽을 취하게 된다. '의미 있는 오락 영화'가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민족적 자존감을 강조하는 대중 영화 '신기전'은 그렇게 탄생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배타적 민족주의'라는 우려도 있다. 오락 영화의 외피를 입혔지만, 영화의 기둥 뼈대는 명나라 몰래 로켓포 개발을 시도하는 세종대왕과 백성들의 활약이다. 작가와 감독은 "민족주의를 팔아먹는 상업 영화라는 표현은 인정하기 힘들다"면서 "사회가 다운(down)되었을 때,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칭찬해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 영화 최대의 하이라이트는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신기전 발사의 스펙터클이다. 신기전의 존재 여부도 잘 몰랐던 일부 네티즌은 이 장면에 대해 '허풍' '과장'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만희 작가는 "경탄의 대상이 조롱의 대상으로 바뀌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흥행 여부를 떠나 신기전의 존재와 위력만큼은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이 대목은 관련 분야 전문가인 항공우주연구원 채연석 박사의 연구와 고증으로 재현한 장면이라는 것. 영화를 본 채 박사는 "실제 신기전 위력의 70%밖에 보여주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가족보다 더 자주 본다"는 두 사람의 인연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학로의 스타 작가였던 이만희 극본의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를 본 김 감독이 작가를 찾아간 것. 첫 만남에서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이 작품을 전도연, 박신양 주연의 멜로 '약속'(1998)으로 만들어 흥행에 성공했고, 이번 작품까지 세 작품을 함께 하는 단짝이 되었다. 두 '젊은 단짝'은 "젊음은 나이 순이 아니라 마음에 달려 있는 것. 여든이 되더라도 영화를 찍고 청탁을 받는 감독과 작가가 되겠다"며 기염(氣焰)을 뿜었다. 9월 중순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렬한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