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회 LG배 세계기왕전] 운명적(運命的)엔딩

〈제11보〉(102~113)="승부란 지내놓고 보면 모두가 운명이다." 조치훈의 숱한 어록(語錄)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걸작품이다. 무슨 뜻일까. 좋은 수를 놓치고 패하는 것도, 상대의 실착에 편승해 승리하는 것도 돌아보면 모두가 운명적이더란 의미다. 하긴 인생사 어떤 일들도 운명의 힘을 피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나간 삶의 족적(足跡) 하나하나와 바둑의 한 수, 한 수는 어찌 그리 닮아 있을까.

102는 조치훈의 마지막 승부수. 그러나 이 점이 백의 패배를 앞당긴다. 참고도 1의 보강이 정수였다. 9까지를 상정하면 미세한데, 그래도 흑이 지는 일은 없었으리란 결론. 그렇다면 102는 옥쇄를 각오한 강경책이었을까. 아니면 조치훈의 운명적 선택으로 봐야 할까. 오직 본인만이 아는 비밀이다.

104의 맞끊음에 흑은 105, 107로 속수(?)를 연발하더니 113까지 수를 늘려놓았고, 백은 놀랍게도 여기서 돌을 거뒀다. 몇 가지 감상을 말하는 조치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다. 필살의 승부사라는 평소 이미지는 간 곳 없는 온화한 인상이다. 그나저나 바둑은 정말 끝난 것일까. 백에겐 대책이 없었을까. 총보에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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