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염화시중(拈華示衆)

〈총보〉(1~113)='그리다 만 그림' 같은 마지막 장면을 그냥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우리 아마추어들이 화룡점정(?)에 나서 보자. 참고도 1은 필수다. 이 수를 게을리하면 그 위쪽을 2단 젖혀 백이 사로잡힌다. 흑2 때 3이 또 불가피하다. 다음 흑4면 백이 5 자리를 뚫릴 수 없다. 결국 상대 그물에 구멍이 너무 많아 흑은 백 3점을 사로잡으며 살아간다는 시나리오다.

20여일 만에 연속 3패를 안겨준 고국의 후배가 조치훈은 야속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승자처럼, 어찌 보면 자애로운 스승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복기를 나눈다. 이창호의 입가에도 엷은 미소가 걸려있다. 염화시중(拈華示衆)이 따로 없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조치훈이 동양증권배 결승 전야에 "18세 소년이 바둑을 알면 얼마나 알까. 내가 손봐주겠다"고 장담했다가 패했던 게 93년이었던가. 세월은 원숙함을, 겸양을 가져다준다. 대가들일수록 그 폭과 깊이는 더하다. 십수 년의 연륜이 더해지면서 50줄을 넘어선 선배는 세계를 완전 정복한 고국 후배가 마냥 대견했던 모양이다. (98…59, 113수 끝 흑 불계승, 소비시간 백 2시간 59분, 흑 2시간 2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