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기자의 촉촉한 시선] '정신의 성형수술' 권하는 사회

물론 영화와 대중 문화에서 '다중 인격'을 소재로 활용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멀게는 공포 영화 '오멘'이 떠오르는군요. 그때는 근대 문명 세계에서 추방되었던 신화와 영(靈)의 귀환이었죠. 하지만 개그의 소재로까지 숱하게 등장하는 요즘의 '다중이'들은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이 만들어낸 소외의 부산물이라는 해석이 더 강합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제 시선을 붙잡았던 장면은 미친 형사 번이 자기 귀를 잘라 상사인 과장에게 선물한 뒤 이 황당한 행위의 이유를 밝히는 대목이었습니다. "그 나이에 다른 인격이 없었거든. 존경할 만한 상사였지."

사실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은"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피도 눈물도 없이 다그치는 부장 앞에서 모든 과제를 해낼 수 있다는 표정을 짓는 나, 돌아서자마자 그 부장의 표정으로 후배를 다그치는 나, 해맑게 웃는 자식 앞에서 무장해제된 나, 하지만 바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의 희생까지 불사하는 이기적인 나….

'매드 디텍티브'에는 무려 7명의 인격을 가진 인물까지 등장하더군요. 어쩌면 자연이 아니라 도시, 콘크리트 속에서 삶을 견뎌야 하는 현대인에게 '다중이'는 병이 아니라 누구나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일 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변에서 자기계발서가 그토록 범람하고, 명상 산업이 성행하는 이유도 그런 탓이겠지요. 자기계발의 원조 격인 맥스웰 몰츠의 표현처럼 '정신의 성형수술'을 불사하는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는 어찌 그리 많은지요.

형사 번이 미쳐버린 것은 평범한 정신으로는 견뎌내기 힘든 세속도시에서 살아내기 위한 그만의 고육책이 아니었을까요. 환갑이 가깝도록 유일한 인격만을 지닌 우리의 형사과장이 존경스러운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