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생을 당겨오지 마라 인생에 네가 다가가라

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운구(67)씨가 27일~12월 6일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저녁에 전(展)》을 연다. 그는 들길과 암실을 오가며 살아왔다. 그는 한 달에 두어 번씩 배낭을 꾸린다. 안면도 염전, 순천의 절집, 정읍의 농가 같은 곳에 멈춰 서서 셔터를 누른 뒤, 서울에 돌아와 광화문에 있는 암실에 한 열흘씩 틀어박힌다.

이번 전시작 113점은 1998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찍은 사진들이다. 작업실에서 만난 강씨는 "저녁 풍경을 찍은 사진들이기도 하고, 내 인생의 저녁에 이르러 찍은 사진들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말투가 건조했다. "사실 내 입으로 내 인생이 저녁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아. 남들 보기엔 벌써 캄캄한 밤중인지도 모르지요."

강씨는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일가를 이룬 것으로 평가 받는다. 그는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사진반 교사가 인화하는 장면을 어깨 너머로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어둠 속에서 인화지에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마술'이었어. '이게 내 인생'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는 조선일보 사진기자(1966~69년)로 사진 인생의 첫발을 디뎠다. 한달 봉급이 5만원 하던 시절, 1년 넘게 돈을 모아 80만원짜리 라이카 카메라를 샀다. 시내 서점에 외서를 주문하면 빨라야 반년 만에 책이 왔다. 그렇게 기다려서 한 권 한 권 책을 읽었다. 그는 동아일보로 옮겼다가 1975년 동아투위 사건으로 해직됐다. 이후 프리랜서로 전국을 돌며 흑백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라이카 카메라 석 대가 그와 함께 세월을 견뎠다.

그는 들길과 들풀, 노인과 와불(臥佛), 돌담과 절집과 소금창고 등을 찍는다. 소설가 조세희(66)씨는 그가 "산소가 없었던 시기, 누구보다도 단란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지켜낸 예술가"라고 썼다. 독문학자 문광훈(44)씨는 그의 사진에 "작고 어둡고 고단하고 힘겨운, 그러기에 삶과 밀착된 서정"이 있다고 썼다.

강씨는 고집이 세다. 그는 "누군가가 카메라를 가렸을 때 '비켜!' 라고 말하는 것조차 왜곡"이라고 했다. "내 몸이 줌(zoom)"이라고도 했다. 멀리서 당겨 찍는 대신 카메라를 메고 피사체에 다가간다는 뜻이다. 또 그는 조수와 제자와 포토샵의 힘을 빌지 않고 대개의 작업을 혼자 마친다.

이번 전시에서 강씨는 여러 순간을 병렬해서 인생의 '맥락'을 보여준다. 가령 안면도 염전에서 촬영한 〈소금창고의 염부꾼〉은 세 컷으로 구성됐다. 그는 우선 소금 가마니가 가득 쌓인 천장 높은 소금 창고를 찍고, 한 발 다가가서 평상에 앉은 늙은 인부를 보여준 뒤, 마지막으로 인부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그는 "나는 가난밖에 없는 얼굴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는 얼굴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02)418-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