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포커스] 작품 잘 만들어놓고 '국제적 망신' 사려나

"할리우드 영화 '○○○' 포스터와 거의 똑같다."(네티즌), "비슷한 분위기일 뿐이다. 우리는 그 영화 포스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제작사) 개봉 혹은 첫 방송을 앞둔 영화·드라마들의 포스터가 표절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인터넷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희귀한 자료도 손쉽게 찾아내는 '네티즌 수사대'의 힘. 그러나 어떤 영화·드라마 제작사도 표절 의혹을 인정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남자 손 2개가 등장하는 SBS 새 드라마 '타짜' 포스터가 할리우드 영화 '이스턴 프라미시스' 포스터와 '판박이'라는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해에는 영화 '꽃미남 테러 사건'이 미국 힙합 그룹 비스티 보이즈의 DVD 표지를 표절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표절 논란,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포스터업계 관계자들은 표절 논란이 불거지는 핵심적인 이유가 "포스터 제작 과정에서 실제로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 해외 팝 음반 표지, 각종 화보 등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영화 '올드보이', '태풍' 등의 포스터 사진을 촬영한 이전호 작가는 "포스터를 만드는 측에서 광고주(영화·드라마 제작사)에 어떤 화면을 구성하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외국의 광고사진 등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데 이때 광고주들이 외국 광고에 너무 집착해 자꾸 비슷한 방향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면 표절 의심을 받을 만한 상황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 포스터 제작사 간부는 "광고주측에서 아예 사진작가를 섭외할 때 외국의 광고사진을 가져와 이런 식으로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영화 포스터 표절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 이후. 그 이전에는 영화 마케팅 비용이 적어 포스터 예산도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한국 영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포스터에 대한 영화 제작사의 관심도 급증했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80~90년대 영화 포스터의 창의성이 더 빛났던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금은 10명 정도의 1급 작가가 아니라면 광고주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드라마의 경우는 산업적 가치를 인정받은 2000년대 이후 포스터 베끼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포스터 전문 사진작가는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영화·드라마 포스터 중 30%는 표절 혐의가 있다"고 말했다. 포스터 디자인 전문 회사 '꽃피는 봄이 오면' 김혜진 실장은 "당연히 좋은 작품을 참고할 수 있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의성을 집어넣는 게 정석"이라며 "인터넷에서 논란이 됐던 일부 포스터들은 좀 심하게 '원전(原典)'의 이미지가 도용된 경우"라고 말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고고 70' 포스터의 윤형문 작가는 "강한 이미지를 보면 영향을 받게 마련이지만 작가는 그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터 표절은 비용과도 연관이 있다. 업계에서는 "제작비가 적게 들어갈수록 표절 논란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포스터업체 관계자는 "제작비가 부족하면 창의성이 뛰어난 1급 사진작가, 디자이너를 쓰지 못하고 또 손쉽게 외국 광고를 베끼려는 경향이 생긴다"고 말했다. 영화의 경우 디자인비·작가비·촬영비·인쇄비 합쳐 포스터 예산이 8000만~2억원선에서 책정된다. 전체 마케팅 비용의 5~10% 수준으로 편차가 큰 편. 드라마는 이에 비해 턱 없이 적다. 1000만원 안팎. 3~4년 전만 해도 채 500만원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포스터 등 광고 표절이 중대한 범죄에 속해 수백억원대 소송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 게다가 포스터는 영화·드라마·음악과 달리 완전한 저작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어 표절이 별다른 저항감 없이 이뤄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전호 작가는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가 해외로 뻗어나가고 있는데 그 작품을 소개하는 포스터가 이런 식으로 현지에서 표절 논란을 빚게 되면 무슨 망신이겠느냐"고 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박웅진 선임 연구원은 "오마쥬, 벤치마킹 등의 말로 포장을 해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표절인 경우가 많다"며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표절에 대한 죄의식이 부족한데 문화를 생산하는 나라의 위신과 관련한 문제이자 훗날 큰 경제적 손해를 볼 수도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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