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과 함축을 사랑하는 관객들에게는 조금 불편할 만큼, 감독의 몇몇 비유와 상징은 여전히 지나치게 단도직입이다. 가령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을 즉각 떠올리게 만드는 목걸이의 나비 문양과 꿈의 연관성, 벗겨진 구두를 신겨주는 장면으로 암시하는 치유와 화해 같은 대목들이 그렇다. 물론 이 직접적인 상징들은 강렬한 에너지로 감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덕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이 영화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사랑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묘파(描破)하는 극 중반 갈대밭 신일 것이다. 현재와 과거의 연인 네 사람이 뒤죽박죽 엇갈리고 포개지면서 사랑이라는 암호의 해독을 시도한다. 애정과 격정, 질투와 의심, 분노와 연민, 양보와 희생 등 사랑의 생로병사(生老病死)가 그 안에 있다. 오다기리 죠와 이나영이라는 매력적인 두 배우를 한 화면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오다기리 죠는 모국어인 일본어로 대사를 하고, 이나영은 한국어로 대사를 한다는 것. 중간에서 통역이 없는데도 둘의 의사소통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전작 '숨'(2007)에서 대만 배우 장첸을 목소리 잃은 사형수 역으로 설정해 언어를 극복했던 감독이, 이번에는 아예 관객의 양해를 구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돌파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초반 이 언어의 충돌은 분명 생경하고 당황스럽다. 하지만 두 배우의 빈틈없는 대사처리와 흡인력 강한 연기는 이 의아함을 곧 자발적으로 잊게 만드는 마법을 보여준다. 특히 불길한 예언적 음조와 과격한 행동으로 사랑의 몰락과 붕괴를 암시하다가도 곧 유순할 정도의 서정적인 어조로 낭만적 연애를 이야기하는 오다리기 죠는 지극히 매혹적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이나영은 김기덕 특유의 비일상적 캐릭터를 만나 처음에는 고전한 듯 보였지만, 중반 이후 안정을 되찾으면서 큰 불협화음 없이 동화됐다. 몽유병을 치료하는 의사 역으로 출연하는 장미희 역시 이 영화의 몽환적 매력 하나를 추가했다. 강제로 인연의 사슬을 끊은 연인이 서로의 쓰라린 환부(患部)를 어루만진다. 분명 비관적이지만, 한 번 더 꾸고 싶은 슬픈 꿈(悲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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