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해리포터

《해리 포터》의 주인공 대니얼 래드클리프(Radcliff·19)가 이번엔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마법'을 부리고 있다. 25일(현지시각) 공식 개막을 앞두고 뉴욕 44번가 브로드허스트 극장에서 프리뷰에 들어간 《에쿠우스》는 일찌감치 올 가을 브로드웨이의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지난 20일 찾은 이 1156석짜리 극장은 연극으로는 드물게 만석(滿席)이었다. 며칠 전 누군가 휴대폰으로 찍은 래드클리프의 알몸 연기 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궁금증을 더했다.

래드클리프는 청바지에 흰색 스니커즈 운동화 차림으로 걸어 나왔다. 거뭇거뭇 턱수염이 난 그에게서 '꼬마 마법사' 해리 포터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래드클리프는 사랑하던 여섯 마리 말의 눈을 말굽 파개로 찌른 17세 소년 알렌 스트랭으로 나온다.

영국 남부의 한 정신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무대 위에서 그는 작아 보였다(실제 키는 165㎝ 가량이다). 그러나 알렌의 동기를 파헤치는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 박사(리차드 그리피스)와 팽팽한 접전을 치르면서 2시간30분 동안 상처 받은 소년의 내면을 긴장감 있게 풀어냈다. 다이사트 박사의 추궁을 받으며 여자친구와 정사를 벌이던 장면을 재연한 종반 10분간,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공연 내내 딱딱한 얼굴이었던 그는 커튼 콜 때에야 살짝 웃음을 비쳤다. 1000명이 넘는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답했다. 여타 브로드웨이 극장처럼 중·노년 관객들이 대부분이었다.

래드클리프는 작년 2월 런던 길거드 극장에서 개막한 《에쿠우스》 공연에서 이미 알렌 연기로 '성인식'을 치렀다. 그 때 이미 해리 포터 이미지를 벗고 성인 배우로 거듭났다는 호평을 받았다. 1973년 영국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에쿠우스》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원작을 쓴 피터 셰퍼(Shaffer)의 대표작이다.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 출신 존 네이피어(Napier)가 대극장에 어울리게 다시 손질한 무대는 간결했다. 가운데 직사각형 의자 4개와 이를 둘러싸고 마구간을 형상화한 6개의 문이 전부였다. 래드클리프는 지난 여름 해리 포터 시리즈 여섯 번째 영화 촬영을 끝내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 자신은 물론, 팬들도 소년 해리 포터에게 작별을 고할 때가 이젠 온 것 같다. 래드클리프는 내년 초까지 일주일에 8차례, 알렌으로 무대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