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백절부굴(百折不屈)

 

 

〈제10보〉(102~127)=기울어가는 바둑을 붙들고 있다는 건 아마추어들에게도 상당한 고역이다. 프로들의 입장에선 그 괴로움이 훨씬 더하다. 비감해지기까지 한다. 이 한 판에 얼마나 큰 꿈을 묻고 승리를 다짐했던가. 패한다는 것은 꿈의 단절 그리고 명예와 실리(돈)가 동시에 날아감을 의미한다. 하지만 김형환은 아직 이 바둑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디선가에서 반격의 실마리를 찾아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한 방 날리려고 내 주먹에 힘주다 보면 남의 주먹은 잘 안 보이는 법. 선수(先手)를 쥔 백이 그 권리를 102, 104로 행사했을 때만 해도 단순한 좌하귀 백진 강화책 정도로만 봤다. 김형환은 찬스가 왔다는 생각에 커버를 내린 채 무심코 105로 받았다. 그 순간 106이란 카운터 펀치가 얼굴을 향해 날아왔고, 110까지 아래쪽 흑 4점이 또 속절없이 떨어져 버렸다.

107로 참고도 1이면 4까지, 이것은 흑 대마 전체가 위험해진다. 결론적으로 105로는 112자리에 지킬 장면. 126까지의 뜻밖의 변화는 집도, 절(두터움)도 백이 독식한 결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백절불굴, 김형환은 이를 지그시 깨물더니 127에 붙여간다. 우변 일대 전체에 대한 흑의 영토 선언에 백은 어떻게 대응해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