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보이' 박해일 "변화 많고 복잡한 인물..내겐 새로운 도전"

"내 안의 것을 다 끄집어 내보자 하는 마음으로 덤볐습니다."

영화 '모던보이'(감독 정지우)에서 경성 최고의 꽃미남이자 바람둥이 해명 역의 박해일은 진지함을 넘어 비장했다. 해명은 파마 머리에 쫙 빼입은 정장, 조선총독부에서 일하는 일제시대의 친일파 엘리트. 그에게서 나라 잃은 슬픔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관심은 외모와 여자, 그리고 즐거운 하루. 그런데 해명이 조난실(김혜수)을 처음 보고 사랑에 빠지면서 인생이 180도 달라진다.

"다른 작품보다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해명은 상당히 변화가 많고 복합적인 인물이라 제겐 도전이었거든요."

해명은 진지함과 가벼움이 공존하는 부조리한 인물이다. 영화 배경인 일제강점기의 시대가 그러했고, 일본에 의해 근대화를 강요당하는 경성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역시 가벼움과 진지함의 오묘한 줄타기를 한다. 박해일은 이 줄타기를 완수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나리오를 읽고 '해명은 박해일이다'라고 말했어요. 제가 출연을 결정했을 때 미리 준비된 옷과 머리, 이미지들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딱 들어맞았죠." 박해일에게 '모던보이'는 맞춤 옷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맞춤이라는 박해일에게도 극적 상황에 맞는 감정 표현은 쉽지 않았다. 갑자기 빠진 사랑에 열병을 앓다가 실마리 하나 안 남기고 사라진 난실에 대한 증오. 애증이 뒤섞인 끈질긴 추적을 통해 난실에 대한 사랑이 조선에 대한 사랑과 같다는 상황. 박해일은 일제시대와 사랑이 뒤엉켜버린 풀기 어려운 감정의 덩어리를 연기해야 했다.

"데뷔작 '와이키키 부라더스'부터 최근작 '좋지 아니한가'까지 제가 했던 영화들에서 배운 모든 걸 다 사용했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박해일은 '연애의 목적'에서 보여준 능글맞음, '소년 천국에 가다'에서 볼 수 있는 천진난만함, '극락도 살인사건'에서 확인한 뛰어난 추리력, '살인의 추억'의 궁금증을 일으키는 묘한 표정 등 그동안 그가 쌓아온 다양한 연기들을 한번에 다 쏟아냈다. 또 김혜수와의 베드신에선 관능적인 분위기까지 선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극 초반에 해명 캐릭터를 경쾌하게 더 잘 조율했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