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미술의 몸은 가져도 영혼은 가질 수 없어"

설치미술가 이불(李日出·45)씨가 11월 20일까지 서울 청담동 PKM트리니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신작 17점을 선보인다. 스테인리스스틸과 폴리우레탄을 깎아서 만든 〈천장 조각〉 연작, 액자 안에 양면거울과 폴리우레탄 구조물을 세워서 형상이 무한히 반복되게 한 〈거울 조각〉 연작 등이다.

이씨는 서울 강북의 오래된 2층 양옥집에서 조수 다섯 명과 함께 작업한다. 조수들이 퇴근하면 절간 같은 집에 이씨와 남편과 늙은 개 세 마리가 남는다. 1년의 반은 이 집에서, 나머지 반은 해외에서 보내는 생활이 13년째다.

이씨는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영월에 아무 연고도, 기억도 없다. 이씨의 어머니가 이씨를 낳을 때 마침 영월에 '도피 중'이었을 뿐이다. 이씨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16세의 나이에 '조국의 혁명에 동참하고자' 한국으로 밀항한 재일교포다.

함께 온 두 오빠가 월북한 뒤 이씨의 어머니는 홀로 남한에 남았고 평생 혁명을 포기하지 않았다. 운동권 청년과 결혼해서 3남매를 낳은 뒤 구슬백 등 편물제품을 만들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한편 수십 년에 걸쳐 끈질기고 은밀하게 지하조직을 구축했다.

일가는 서울 응암동 일대의 단칸 셋방을 일년에 한 번씩 이사 다녔다. 이씨는 "그때마다 경찰이 귀신같이 알고 찾아왔다"며 웃었다. "어머니가 숨겨둔 일본어 사상서적을 찾아내려고 담당 형사가 온 집안을 뒤엎곤 했지요. 어머니가 이사 갈 때마다 책을 꽁꽁 싸시기에, 저는 어머니가 책이 좋아서 그러시는 줄 알았어요."

이씨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는 시국사건으로 수감됐다. 아버지는 검·경을 피해 도피했다. 이씨 등 3남매는 서울 외곽의 과수원에 가서 계사(鷄舍)를 개조한 단칸방에 세 들어 살았다. 조모와 결핵 앓는 삼촌이 동거인 겸 보호자였다. 이씨는 조모가 주는 돈으로 비지와 국수를 사다 끼니를 준비했다.

이씨는 "가난했지만 그것이 부끄럽다고도, 불편하다고도 생각지 않았다"고 했다. 이씨는 자기 예술의 심연을 세 가지로 압축했다. "존경하는 어머니와 체제의 불화, 부모의 신념에 대해 발설해선 안 된다는 고립감, 내 부모는 옳게 살고자 노력했으며 나에게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재능이 있다는 자의식. 깊이 들어가면 그거죠."

이씨는 홍익대 82학번이다. 한국 미술계가 민중미술과 순수미술로 양분됐던 시절 그녀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전위적인 미술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뉴욕현대미술관 개인전(1997년), 베니스비엔날레(1999년), 이스탄불비엔날레(2001년), 프랑스 파리 카르티에재단 개인전(2007년) 등을 거치며 서구 미술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이씨는 내년 10월 독일 베를린에서 대표작을 두루 보여주는 전시를 연다. 미국 뉴뮤지엄 관장을 지낸 댄 캐머론(Cameron)이 이씨의 큐레이터다. 이 전시는 런던·뉴욕·도쿄·베이징 등을 거쳐 2010년 서울에 들어올 예정이다.

이씨는 "인간은 미술 없이도 살 수 있지만, 나는 위대한 미술작품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부자들이 미술을 떠받치고, 어떤 작가도 그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요. 그러나 시장이 미술의 '몸'(작품)은 집어삼켜도 미술의 '영혼'은 건드리지 못해요."

이씨는 생각에 잠긴 얼굴을 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는가' 의심이 들어요. 전에는 누가 물으면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했어요. 정말 그랬을까요? 나는 언제나 내 작품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작가로서 어느 지점에 서 있느냐고 물으셨지요? 모르겠어요. 나는 아직 산 정상에 이르지 않았어요. 분명한 건 그뿐이지요." (02)515-9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