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상처와 약(藥)

〈총보〉(1~208)=이세돌의 데뷔 시절은 자신감으로 가득했으나 성적은 기대를 밑돌았다. 제 힘만 믿고 우쭐대다가 선배들에게 무수히 걷어차였다. 그 과정에서 완급 조절의 요령을 배우며 성장한 끝에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어린 시절의 이세돌이었다면 78로는 참고도 1로 대뜸 주먹부터 휘둘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흑 2의 급소를 맞은 뒤 6까지 단숨에 곤란해진다.

백 60이 문제수여서 김지석은 초반 한때 우위에 섰다. 81로 84에 지켰더라면 우세가 지속됐을 것이다. 아직 그는 바둑을 오로지 전투로만 이해하고 있다. 냉정함과 넓은 시야까지 보완되는 날, 그는 '리틀 이세돌'이란 애칭처럼 세계를 누비게 될 것이다. 내용면에서 이 판의 패배는 상처로 남을 만 했고, 그 여파로 김지석은 이후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다.

아무튼 이세돌이 이 판에서 보여준 타개 솜씨는 신기(神技)에 가까웠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시커먼 흑진 속에서 그는 화려한 경신술과 둔갑술로 적의 저돌(猪突)을 무력화시켰다. LG배 사상 최초의 2연패(連覇)는 과연 실현될까. 열쇠는 이세돌이 쥐고 있다. (143…119, 158 164 170 176 182 188 194 200 206…124, 161 167 173 179 185 191 197 203…125, 177…165, 178…159, 189…32, 208수 끝 백 불계승, 소비시간 백 2시간 25분, 흑 2시간 5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