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선경(仙境)과 불심(佛心)

〈제1보〉(1~16)=대국 날 백담사 계곡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여름 날씨만큼 못 믿을 게 또 있으랴. 전날까지 쪽빛 하늘 아래로 또렷한 자태를 자랑하던 먼산들이 안개비에 젖어 한 폭의 동양화로 변해 있다. 1층으로 내려간 기자는 감동했다. 사찰 측이 준비한 우산들이 출전기사 이름표까지 부착된 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숙소와 대국장은 10여m, 인공연못을 둘러가도 30m가 채 못 되는 거리였고 퍼붓는 장대비도 아니었다. 부처님의 자비는 가까운 데 있었다.

23세 박영훈과 25세 왕야오(王堯) 간의 한·중 청년 대결. 상대가 홀짝을 틀리자 박영훈은 망설임 없이 흑돌 통을 당겨온다. 그리곤 쌍방 복기하듯 빠른 손놀림. 5의 귀굳힘까지 순식간에 놓여졌다. 6의 갈라침과 7의 빈 귀 걸침 역시 노타임이다.

10의 완만한 협공이 다소 이색적인 착점. 11의 미끄럼도 최근 유행을 타고 있다. 12로는 '가'에 두고 흑 '나' 때 '다'를 차지하는 것도 충분한데 타이트한 협공을 택했다. 박영훈은 13에 붙여 응수를 보더니 15로 압박해 간다. 16은 낯선 벌림. 참고도 11까지 늘어놓고 있던 검토실 기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