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내의 곰삭은 애정 가득

30년 넘게 무대 공연 사진과 예술가들의 초상을 촬영해온 사진작가 이은주(63)씨가 한국의 명사 부부 50쌍의 초상을 담은 사진집 《부부 이야기》(오픈하우스)를 냈다.

이씨는 지난 1년간 명사 부부 50쌍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쑥스러워 하는 이들을 설득해서 각자의 자택으로 카메라를 메고 찾아갔다. 명사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이씨는 그들의 진솔한 표정을 렌즈에 포착했다. 명사들이 직접 부부 생활을 돌아보는 글을 쓰게 했고, 그들이 간직해온 옛날 사진과 이번에 찍은 사진을 대비시켰다.

완성된 사진집에는 부부간의 곰삭은 애정이 넘친다. 만난 지 7시간 만에 약혼식을 했다는 국수호(안무가)·송경자(화가)씨 부부, 매일 아침 5시에 침대에서 손잡고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송자(전 연세대 총장)·탁순희(의사)씨 부부…. 사진 속 인물들이 '명사'의 얼굴을 벗고, 사랑했다 미워했다 하면서 둘이 함께 파도를 헤쳐온 '남편'과 '아내'의 얼굴을 보여준다.

가령 연극 연출가 김정옥(76)씨의 부인 조경자(68)씨는 "그동안 여러 번 이혼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못했다"고 썼다. 연극도 하고 골동품도 모으며 호기롭게 청춘을 보낸 남편이 은퇴 후 사설박물관을 차리겠다고 나서자, 그녀는 "이혼하고 싶은데 당신이 돈이 없어서 이혼도 못한다"고 투덜거렸다. 남편은 태평하게 대꾸했다. "40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이혼값(위자료) 떼먹겠어? 안심하고 외상으로 이혼해." 부부는 이혼하긴커녕 함께 탱고를 배웠다.

배상면(84) 국순당 회장은 여든 살을 넘긴 뒤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맨먼저 부인 한상은(80)씨에게 "여보, 잘 잤소?" 하고 묻는다. 젊은 날 일에 쫓겨 부인의 생일과 결혼 기념일을 번번이 잊어 버린 것이 미안해서다. 배 회장은 "무조건 아침인사를 계속하고 보니 좀 주책 없는 표현이지만 아내가 정말 사랑스럽고 귀엽고,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고 썼다.

소설가 한말숙(77)씨는 가야금 명인 황병기(72)씨와의 결혼 생활을 "좋았다가 미웠다가, 귀찮다가 고마웠다가 하면서 거의 50년을 지루한지 모르고 함께 살았다"고 압축했다. 그녀는 "태어났기 때문에 기약된 이별의 순간이 우리에게도 차츰차츰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그를 좀 더 아끼고 살려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여전히 남편에게 이런 호언장담을 한다. "(결혼 초에 누차 말했듯) 모든 것을 버려도 좋을 만큼 좋은 여자가 생기면,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응원해주고 당장 이혼해주고 내 차에 태워서 그 여자한테 데려다 줄 테니, 힘 내!"

사진작가 이씨는 "이혼율이 높아지는 젊은 세대들에게 부부의 아름다운 동행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젊은 날의 싱그러운 사랑이 아니더라도, 주름살 속에 담겨있는 속 깊은 사랑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했다. 이씨는 사진집에 담긴 부부 사진 50점을 모아 11월 11~17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전시한다. (02)734-0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