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얘기를 들어보셨나요?

7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서양미술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가 열린다. 모스크바에 있는 국립푸시킨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17~18세기 유럽 회화 49점과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 27점이 대륙을 건너왔다. 올 겨울방학을 겨냥해 열리는 대규모 전시회들 가운데《…렘브란트를 만나다》의 특징은 ▲그림마다 이야기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는 점 ▲인상파 이전 유럽 대가들의 무르익은 테크닉에 흠뻑 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화가 안토니 반다이크(1599~1641)가 그린 〈도비니 부인과 포틀랜드 백작부인〉에는 17세기 영국 귀족들의 로맨스가 깃들어 있다. 반다이크는 영국 왕 찰스1세(1600~1649)의 궁정화가였다. 그림 속 두 여인은 찰스1세의 인척이다. 왼쪽 여자 포틀랜드 백작부인은 국왕의 사촌누이다. 오른쪽 여자 도비니 부인의 본명은 캐서린 하워드다. 우유빛 드레스 아래 살포시 배가 부풀어 오른 이유는 그녀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포틀랜드 백작부인의 남동생(도비니 경)과 비밀리에 결혼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 솔깃한 이야기들에 앞서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 '눈'이 즐겁다. 특히 빌럼 판 알스트(1627~1683)의 〈장미와 복숭아〉, 얀 판 하위쉼(1682~1749)의 〈꽃과 과일〉 같은 정물화는 당대 최고 화가들의 테크닉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터질 듯이 부푼 과육, 투명한 유리병, 비단처럼 결 고운 장미 꽃잎이 화폭을 꽉 채운 정물화들은 한 걸음 다가서도 저만치 물러나도 눈이 즐겁다. 감수성 풍부한 관람객이라면, 이 정물화들 속에서 '무르익은 것들의 농익은 슬픔'까지 감지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노른자위는 렘브란트의 유화 〈나이 든 여인의 초상〉과 판화 26점일 것이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는 "렘브란트는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조를 통해 사물의 윤곽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까지 포착한 화가"라고 말했다. 관람객이 〈나이 든 여인의 초상〉 앞에 서면, 이 설명이 더욱 실감난다. 그림 속 여인의 눈동자는 차분하고, 부드럽다. 그녀의 시선에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깊이가 있는 것은 렘브란트가 한 생애를 품위 있게 살아낸 사람의 향기를 거기 그려 넣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전시는 내년 2월26일까지. (02)2113-3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