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비율이다

오는 7일부터 17일까지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미술관에 들르는 사람은 미술관 문턱을 넘을 때부터 등 돌려 나올 때까지 꼼짝없이 '작품'의 일부가 된다.

지난해 이중섭미술상 수상자인 홍승혜(洪承蕙·49·서울산업대 교수)씨는 미술관 바닥에 가로 1m, 세로 1m 간격으로 모눈종이 같은 격자(grid)를 그렸다. 이 격자, 그리고 흐르듯 그 위를 지나는 숱한 사람과 시간이 통째로 그녀의 작품이다.

홍씨는 1997년부터 줄곧 컴퓨터로 작업해왔다. 포토샵 해상도를 한자릿수로 낮추면 화면이 바둑판 같은 격자가 된다. 이 격자의 한 칸 한 칸에 해당하는 정사각형을 다양한 형태로 배열한 다음 프린트했다.

이중섭미술상 수상 1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회에서, 홍씨는 컴퓨터 속 격자를 컴퓨터 밖 현실세계로 쭉 잡아 늘였다. 그림을 그려서 미술관에 거는 대신 미술관이라는 공간 그 자체를 작품으로 변신시켰고, 그림과 현실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게 했다. 그래서 전시회 제목도 《온 앤 오프(On & Off)》다. 한 가지 화두를 붙들고 오래 궁구한 끝에 홀연히 홀가분해진 사람 특유의 여유와 위트가 미술관 곳곳에 흐른다.

홍씨는 "애초에 격자 작업을 시작한 것은 '순수조형'을 탐구하기 위해서였는데, 이제는 그것이 내 삶의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인생도 결국 '비율'의 문제니까요. 사람은 매 순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해야겠다'거나 '이러저러하니까 이렇게 하자' 이런 식으로 결정을 내리고요. 사람과 사람의 균형, 소유와 버림의 비율…. 깊이 따져보면,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균형과 비율에 의한 것이죠."

누군가가 '인간 홍승혜가 인생에서 질색하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한다면 ▲허장성세 ▲자아도취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 등이 상위 3개 항목을 차지할 것 같다. 홍씨는 "누구의 인생에나 '인생이 이러저러하게 흘러갈 것이다'라는 예측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들이 있다"며 "지금 내게 신념이 있다면 세상과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늘 유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신념을 갖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우익은 좌익의 존재 이유고, 구속 없이는 해방도 없고, 시간이 흐르는 것은 애달프면서 동시에 고마운 일이지요. 모순된 요소의 공존에 나는 관심이 있어요." (02)724-6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