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가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의 개막작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만든 브라질 페르난도 메이렐리스(Meirelles) 감독은 영화제가 끝난 후, 필름을 들고 포르투갈 리스본의 한 허름한 극장으로 날아갔다. 나이 탓에 장거리 여행을 포기해야 했던 원작자에게 영화를 보이기 위한 자리였다. 감독은 "칸 뤼미에르 극장 개막식에서 2000명 관객에게 보였을 때보다 더 떨렸다"고 고백했다.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원작자는 바로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86)이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출신의 노벨문학상(1998년) 작가로 현실과 환상을 뒤섞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살아있는 교과서'다. 비행기는 못 타지만 집필은 계속하고 있는 이 노(老) 작가와 조선일보가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처음에는 영화화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고 들었습니다. 메이렐리스 감독이 1995년 출간 직후부터 욕심을 냈지만 무려 일곱 번의 제안을 거절하셨다고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사실은 제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된다는 게 영 이상하더군요. 그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영화화를 꺼린다는 의사를 전달했던 겁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허락했고, 지금 그 결정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결정 이후에는 감독에게 모든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딱 하나. 소설 속의 개(눈물을 핥아주는 개)가 너무 작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만 빼고는요."

사라마구는  용접공 출신… 46세때부터 주목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학력이 전부. 철물 땜질을 하며 독학으로 문학 수업을 했고, 이후 기계 제도사, 번역가, 출판인, 신문 기자, 칼럼니스트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나이 마흔여섯 때부터. 1982년작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유럽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로 떠올랐고, 바로 이 작품으로 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쉼표와 마침표 이외의 문장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문체로도 유명하며, 60세 이후 더 정력적인 집필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눈 먼…'은  '실명 바이러스' 번진 사회상

원인을 알 수 없는 '실명(失明)'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고, 시력을 잃은 감염자들은 수용소에 격리된다. 등장 인물은 '실명(實名)'이 없다. 의사(마크 러팔로), 의사 부인(줄리안 무어), 검은 안대의 노인(대니 글로버), 악당(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눈물을 핥아주는 개, 이런 식이다. 유일하게 앞을 볼 수 있는 의사 부인이 마지막 희망으로 남지만, 영화는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도시에서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가를 동정 없는 시선으로 드러낸다. '시티 오브 갓' '콘스탄틴 가드너'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메이렐리스 감독 연출. 2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