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새파란 붓의 진지한 발칙

동양화가 손동현(28)씨는 서울 청담동 갤러리2에서 열리고 있는 세 번째 개인전 《왕(King)》에서 전신사조(傳神寫照)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변용함으로써 오늘의 인륜을 감식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전신'이란 대상이 간직하고 있는 정신을 그 형상을 통해 표현해내는 일이고, '사조'란 화가가 관조한 대상의 형상을 묘사하는 일을 일컫는다. 말은 간명하나, 방도는 마련하기 쉽지 않다.

전시는 가수 마이클 잭슨의 초상 24점으로 구성됐다. 각 그림의 제목은 〈왕의 초상(Portrait of the King)〉으로 동일하다. 오늘의 대중문화계에서 문제적 관상을 지닌 명사를 꼽자면, 십중팔구 잭슨이 1순위에 놓일 테다. 게다가 '58년 개띠'인 잭슨은 올해로 만 50세가 됐으니, 대상의 선정은 꽤 자연스럽다. 이제는 대상의 본질을 포착하는 방법론이, 대상의 선정만큼이나 문제시 될 차례다.

손씨는 잭슨의 관상학적 변화를 기록하고 그를 전통적 음양법으로 표현하기 위해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수행했다. 수집한 각종 자료에 기초해 관찰한 대상의 형상을 적절히 묘사하려 애쓰는 동시에, 변화의 양상을 유형학적으로 기록하고자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잭슨의 정규 솔로 음반 가운데 미주 시장에서 싱글 앨범으로 별도 발매된 40곡의 노래를 기준점 삼아 연대기적 초상 40점을 그린다. 각 싱글별로 잭슨의 전신을 포착하기 위해 뮤직비디오를 반복 고찰하고, 뮤직비디오가 제작되지 않은 경우엔 앨범 커버의 사진을 탐구하며, 앨범에 사진이 없는 경우엔 해당 음반을 발매한 시기의 프로모션 사진을 관조한다."

작가가 초상의 기본 형식에 장치한 요소도 흥미롭다. 가수가 "팝의 왕"을 참칭하기 시작하는 1989년을 기점으로 인물의 좌대가 달라진다. 1989년 이전의 잭슨들은 호피가 깔린 나무 의자에 앉아 화문석 족좌대에 발을 얹은 모습인데, 이는 전형적인 조선 사대부의 초상화인 〈오재순 초상〉(삼성미술관리움 소장)에 기초한 도상이다. 반면 1989년 이후의 잭슨들은 황금색 용머리가 장식된 붉은 의자에 앉았는데, 이는 조선의 왕이 사용했던 어좌(국립고궁박물관 소장)를 옮겨 그린 도상이다.

〈왕의 초상〉 24점은 손씨가 지난 1년간 작업한 소산으로, 1971년에 나온 싱글 앨범 〈갓투비데어〉 표지에 실린 잭슨의 모습에서 시작해 2002년에 나온 싱글 〈원모어찬스〉에 실린 모습으로 끝난다. 화폭에 포착된 변화하는 관상과 낯빛과 머리모양, 그리고 복장과 태도의 추이는 그 자체로 대중문화사의 기록이자 비평이 된다. 절차탁마의 시간을 거쳐, 작업의 개념적 층위와 시각적 층위가 비로소 기운생동의 조화를 이룬 덕이다. 전시는 12월 20일까지. (02)3448-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