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밤 비행기'

〈제7보〉(74~86)=74는 누가 보더라도 절호의 대세점인데 이세돌 본인은 이 점을 크게 후회했다. 75가 안성맞춤의 선수여서 79의 강력한 붙임이 성립한다는 것. 그렇다면 어디에 두었어야 할까. 그가 내놓은 대안은 참고도의 1, 3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그림은 A도 절대 선수여서 중앙 백은 흠집 하나 없는 거대한 세력으로 위용을 자랑했을 것이다.

흑이 77로 빠지자 입맛을 다시던 이세돌, 78로 허공에 흰 조약돌 하나를 던져 본다. 어느 쪽이 될지는 몰라도 백 울타리의 한 축으로 써먹겠다는 생각이다. 80은 기세지만 다소 모험적인 수. 86까지 한껏 버틴 것을 보면 74의 '오(誤)조준'에 기분이 많이 상해 있는 모양이다. 여기까지가 오전 대국. 봉수 후 한국기사 4명이 식탁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다. 이세돌이 침묵을 깬다.

"난 아무래도 오늘 저녁 비행기 표 끊어서 곧장 올라가야 할 것 같다(이틀 뒤의 4강전에 못 나갈 만큼 형세가 나쁘다는 뜻). "애고, 형 나하고 같이 상경하면 되겠네(박영훈)." 후배들의 대화를 듣던 이창호가 빙긋이 웃는다. 막내 김형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도통 말이 없다. 이세돌의 탄식은 진심일까, 단순한 엄살일까. 적어도 점심시간 동안엔 실제 고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