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을 웃기는 '디자인의 유머'

새빨간 통 굽 하이힐이 있다. 굽 높이는 약 20㎝. 발등이 꺾일 만큼 아찔하다. 놀라운 건 이 굽이 와인 오프너란 사실. 밑창은 와인 오프너에 꽂혀 있는 와인 코르크다. 굽이 닳으면 새 와인을 비운 뒤 새 코르크로 갈아 끼우면 된다는 깜찍한 발상이다. 이 작품은 디자이너 이겸비씨가 4000원에 산 와인 따개로 만든 '와인 오프너슈즈'. 4000원짜리 싸구려가 디자인과 만나 엄연한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20일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개막한 '디자인 메이드(Design made) 2008' 전시는 이같이 허를 찌르는 상상력으로 무장한 작품을 한 보따리 풀어놓았다. 2005년부터 실험적인 시도를 해온 디자인 메이드의 이번 주제는 '세이빙 바이 디자인(Saving by design)'. 즉 '디자인으로 절약하기'다. 꽁꽁 얼어붙은 경제 상황에서 디자인이 줄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담았다.

디자인의 절약 방식에 따라 작은 전시로 구분돼 있다. 이름부터 눈에 띄는 '해킹 이케아(Hacking IKEA)'전은 네덜란드의 프렘젤라 디자인재단 '플랫폼 21'이 선보였던 같은 제목 전시회의 한국판. 이케아(IKEA)는 '모든 이들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싼 가격의 실용적인 제품을 만드는 스웨덴의 DIY 가구 회사. 이케아의 저가 소품을 활용해 만든 작품이 전시된다. 디자인문화재단 장인기 큐레이터는 "'디자인의 대량생산'이라는 이케아의 부작용을 짚어보고, 재활용 디자인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라고 설명했다.

5달러짜리 플라스틱 갓 조명은 새싹 재배기로 변신했다. 전등 갓은 햇빛 가리개가 됐다가, 물받침으로 변신하면서 쓰임새를 바꾼다. 디자이너 주상현씨는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에서 새로운 생산자가 되는 과정을 풀어냈다"고 말한다.

일상에 널린 흔한 재료를 본래의 쓰임과 달리 만들어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자리 이동하기(Super normal)' 코너에서는 자잘한 소품의 부활을 체험할 수 있다. 시장에서 파는 빨간 소쿠리가 동굴 속 거대한 종유석 모양의 조명으로 변신했다. 디자이너 이상진씨는 때마침 김장철이 겹쳐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소쿠리를 250여개 구하기 위해 재래시장을 싹쓸이했다. 그 옆에 있는 이광호씨의 작품 '하얀 초콜릿'은 별다른 가공 없이 열선으로 스티로폼을 깎아 만든 소파다.

'기능 더하기(Super function)' 부스에서는 다양한 기능을 합쳐 공간이나 사물의 효율성을 높인 디자인을 관람할 수 있다. 폭 10㎝ 정도의 좁은 미니 테이블에 쟁반과 와인 보관통, 컵홀더 등을 붙여 만든 다기능 테이블, 고무끈이 달려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운동할 수 있는 옷 등 기발함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

디자이너 이장섭씨가 아트 디렉팅한 전시 공간 자체도 눈여겨볼 만하다. 까만 비닐봉지와 황학동에서 1000~2000원에 구입한 헌 창틀, 버려진 시멘트 포장지와 쇼핑백 등이 부스를 장식한 소재다. 총 재료 구입비 20만원. 그 자체가 '디자인으로 절약하기'라는 주제를 웅변하는 듯하다. 입장료 일반 5000원, 초·중·고 학생 3000원, 20인 이상 단체 1000원. 다음달 17일까지. 문의 (02)735-96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