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구본창의 '젊은 날의 초상'

"내가 가장 짜릿하다고 생각하는 모험은 카메라를 둘러메고 미지의 거리를 기웃거리는 일이 아니다. 내게 진정 가치 있는 것은 내 자신의 안쪽을 찾아나서는 작업이다."

1985년 다큐멘터리 사진이 지배하던 한국 사진계에 갓 독일 유학을 마친 만 32세의 사진가 구본창씨가 뛰어들었다. 그는 "사진행위는 나 자신의 고유성을 찾는 내면 탐구여행"이라고 했다. 현장을 기록하고 불의를 고발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대신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고 노출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는 이후 배병우·민병헌씨 등과 함께 한국 사진의 새 지평을 연 작가로 자리잡았다. 구씨가 최근 자신의 초기작을 모은 사진집 《시선 1980》(와우이미지)을 펴냈다. 장년의 구본창씨가 눈(雪)과 나무와 곤충과 희디흰 달항아리를 섬세하게 찍는 사진가라면, 이 책은 '청년' 구본창씨가 훗날의 자신에 이르기 위해 암중모색하던 나날의 기록이다. 그는 선배들이 "얘기 안 된다"고 그냥 지나치는 1980년대의 일상 풍경에 살며시 렌즈를 들이댄 젊은이였다.

뜨거운 연인들을 그린 극장 간판 아래 냉랭한 생활인들을 태운 버스가 달리는 장면, 소년티가 남은 젊은 경찰관들이 오락기 앞에서 삼매경에 빠진 장면, 인적 없는 공중전화 부스에 가로등 빛이 미끄러지는 장면 등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타인의 인생과 자신의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호기심이 반짝거린다. 훗날 세상을 놀라게 한 재능의 전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