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일모도원(日暮途遠)

〈제9보〉(101~116)=제한시간의 길고 짧음과 승부와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 LG배 등 국제기전과 국내 주요기전 대부분은 1인당 3시간을 주는 반면 일본의 유서 깊은 3대 기전은 각 8시간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 바둑계는 이런 차이로 인한 '적응 부족'을 국제대회 부진의 한 이유로 꼽는다. 이 바둑을 두고 있는 천원 타이틀(1인당 4시간) 보유자 고노린도 "제한시간에 따라 운영방식이 전혀 달라진다"는 견해를 최근 밝혔다.

101로 발걸음을 떼는 흑의 심정은 처량하다. 불과 몇 수 전까지만 해도 팽팽했던, 오히려 집으론 우세가 점쳐지던 바둑을 단 몇 수만에 버려놓았다. 하지만 시간배분 실패를 핑계 삼기엔 뭔가 군색하다. 흑은 아직도 30여 분이 남은 상태. 백은 108까지 챙길 것 다 챙기고 "어디, 살아보슈"라는 표정으로 공을 넘긴다.

108로 참고1도 1은 6까지 자칫 시끄러워질 수 있다. 고심 끝에 109로 붙여 혈로를 찾아 나섰지만 112가 따끔하다. 113으로 참고2도 1은 4로 파호당해 안형(眼形)이 헝클어진다. 116도 통렬한 급소. 날은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다. 산다는 보장마저 없다. 흑의 그로기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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