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손을 뻗어 천국에 붓을 대다

덕수궁 옆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프랑스 국립퐁피두센터 특별전―화가들의 천국》이 개막했다. 앙리 마티스, 피에르 보나르, 라울 뒤피, 호앙 미로, 마르크 샤갈, 이브 클랭 등 유럽 대가들의 작품 79점이 관람객을 유혹한다. 전시 주제는 '천국의 이미지', 전시장 입구에 드리운 흰 발이 그 프롤로그다.

◆낙원에서도 인간은 늙는다

발 위에는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1594~1665)의 그림 〈아르카디아의 목자들〉이 어른거린다. 프로젝터로 쏜 영상이다. 이 유명한 옛 그림이 "어서 낙원으로 들어오라"고 관객을 꾄다. 아르카디아는 로마 서사시에 나오는, 관능이 넘치는 상록상춘(常綠常春)의 전원이다.

푸생은 아르카디아의 젊은 목동들이 "에 틴 아르카디아 에고"(Et in arcadia ego)라고 새겨진 묘석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그렸다. "나도 한때 아르카디아에 살았노라"라는 뜻으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와 함께 인생의 유한함을 함축한 라틴어 격언이다.

◆은근한 유머, 우아한 색채, 태평스런 허무

이상향 아르카디아에서조차 청춘은 휘발하고 인간은 죽어 땅에 묻힌다. 따지고 보면 심각한 주제인데, 발 뒤에 이어지는 회랑은 어디에 눈을 두건 즐겁기 짝이 없다. 은근한 유머, 우아한 색채, 태평스런 허무가 넘실거리기 때문이다.

막스 에른스트(1891~1976)는 두 강(江) 사이에 가로놓인 완만한 구릉에 포동포동한 여인이 나른하게 누운 모습을 그리고 〈프랑스의 정원〉이라고 명명했다. 피에르 보나르(1867~1947)의 유화 〈미모사가 피어있는 아틀리에〉는 분홍색 창틀 너머로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장면이다. 앙리 마티스(1869~1954)의 유화 〈붉은 실내〉는 화면 가득 화려하고 생생한 붉은빛이 넘쳐흐른다.

모래 위에 드러누운 미인을 그린 프란시스 피카비아(1879~1953)의 유화 〈햇빛 속 수영복을 입은 여인〉은 2차 대전 중(1942년)의 작품이다. 화가는 흡사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세상엔 전쟁이 한창이나, 우리는 사랑 속으로 도피하리라."

◆사라진 나날과 다가올 나날의 접점

이 향락적인 산책의 끄트머리에서 관람객은 지우제페 페노네(61)의 설치작품 〈그늘을 들이마시다〉와 만난다. 이 작품은 가로 11m, 세로 7m, 높이 3.5m짜리 어스름한 방이다. 입구 정면 벽에 인간의 폐 모양을 한 금동 조각이 매달려 있고, 네 벽에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월계수 잎이 쌓여있다. 전시를 기획한 디디에 오탱제(Ottinger) 퐁피두 국립현대미술관 부관장은 "작가가 2001년 프랑스 아비뇽에서 딴 잎사귀들"이라며 "작품이 나이를 먹으면서 처음엔 새파랗던 잎사귀가 노랗게 바랬다"고 했다. 마른 나뭇잎 향기를 들이마시며 이 방을 천천히 서성거린다. 관람객 마음 속에 2001년 아비뇽의 여름과 2008년 서울의 겨울이 하나로 겹친다. 전시는 내년 3월 22일까지. (02)2124-8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