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나라에 우승 선물"

세계적 체스스타로 성장한 고려인 3세 청년이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기 위해 내한한다. 세계체스연맹(FIDE) 공인 최고등급 '그랜드마스터' 로 활약 중인 김 알렉세이(22)가 그 주인공.

알렉세이는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갖고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지만 체스인으로서의 소속연맹은 한국이다. 세계적 여성바둑 기사인 루이나이웨이가 중국 국적이면서도 한국기원 소속 기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 우즈벡 선수로 뛰던 알렉세이가 해당 연맹을 한국으로 옮긴 배경엔 고려인들의 아픈 민족사와 개인적 체스사랑 등의 사연들이 녹아있다.

그의 할아버지 니콜라이 김씨는 스탈린 정권에 의해 1937년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 당한 고려인 1세다. 남달리 실향의 한에 젖곤 했던 그는 손자가 네 살이 되자 체스를 가르쳤다. 학업에도 뛰어났던 알렉세이는 11살 때 모스크바 주니어챔피언에 오르는 등 비범한 재주를 보이며 세계적 강호로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한민족을 대표하는 선수가 돼라"는 유언을 남기고 타계했다.

알렉세이는 2004년 그랜드마스터에 등극했다. 그랜드마스터는 체스에서 최고의 고수들에게만 부여되는 칭호. 전 세계 3억 명으로 추산되는 체스 인구 가운데 이 칭호로 불리는 체스 기사는 1000명 남짓할 만큼 적다. 그랜드마스터가 소속을 바꿀 경우 거액의 이적료(당시 한화 약 200만 원)를 국제연맹에 납부해야 했지만 그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2006년 대한체스연맹으로의 이적을 감행했다.

알렉세이는 25일까지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리는 체스올림피아드에 한국선수로 출전한 뒤 내한, 30일부터 내달 6일까지 올림픽공원서 거행될 제1회 하이 서울 코리아오픈 체스토너먼트에 참가한다. 함께 초청된 세계 상위 랭커 50여 명 가운데는 알렉세이 외에도 연해주 출신 비아체슬라브(22·인터내셔널마스터), 카자흐스탄 출신 에브게니 박 등 고려인 4세 선수들이 포함돼 있다.

현재 모스크바 체육대학 체스학과 졸업반인 알렉세이는 3년 전에도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찾은 적이 있었다. 당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질문에 그가 서툰 한국말로 내놓은 답은 '어머니가 담근 김치로 만든 찌개'였다. 한편 20여 명으로 구성된 '체스 후진국'한국 팀은 알렉세이가 가세한다는 소식에 역대 최고의 성적을 작성하는 꿈에 부풀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