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패잔병(敗殘兵) 행렬

〈제10보〉(117~127)=이세돌의 승부사이클을 보면 매우 흥미롭다. 눈 하나 까딱 않고 10몇 연승, 20몇 연승을 해치우는가 하면 느닷없이 연패에 빠져들기도 한다. 지난 10월 초엔 랭킹 1위 기사론 좀체 보기 드문 5연패를 기록, 본인의 최다기록(6연패·2003년 말)을 갈아치울 뻔 했다. 얼음장 같은 냉정함 대신 불꽃 같은 투혼으로 승부하는 '기세(氣勢)'형 기사들에게 종종 등장하는 현상이다. 기자절야(棋者切也)라고 했다.

119, 121은 끊어서 어떻게든 타개의 실마리를 찾아보겠다는 뜻. 122는 절대수로, 이곳을 흑에게 당하면 잡힌다. 123도 눈물겨운 몸부림. 참고1도 1, 3이면 좌상귀 자체는 늘어진 패(覇) 모습이 되지만 14까지 회돌이 축에 걸린다(11…6). 124까지 귀가 한 수 차이로 함락된 대신 흑도 눈 하나를 마련했다. 127로는 '가'로 붙여나가고 싶은데 참고2도 10까지 살기 어렵다. 할 수 없이 127. 마치 천지를 녹일 듯 작열하는 태양 아래, 가도가도 모래뿐인 사막을 행군하는 지친 패잔병들의 모습이다. 자, 이 흑 대마는 과연 지구 끝 어딘가에서 오아시스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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