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백(白) 불계승

〈제13보〉(170~194)=이 바둑에 주어진 시간은 1인당 3시간. 흑이 마지막 초읽기까지 쫓기며 2시간59분을 사용한 사이 백은 1시간58분만을 썼다. 시간이 넉넉할 경우 웬만한 기사들이라면 손에 들어온 승리를 행여 놓칠까봐 신중을 기하기 마련. 그러나 마지막 30여 수 동안 이세돌의 착점 속도는 번개처럼 빨랐다. 위기에 몰린 상대의 숨통을 끊으려면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아야 된다는 이세돌 특유의 승부사적 본능이다.

170으로 진로를 막아섰을 때 171의 붙임이 준비돼 있었다. 여기서 백이 참고도 1로 차단했다간 6까지 걸려든다. '신중파'들이 경계하는 전형적 역전 시나리오다. 천하의 이세돌도 이때만은 3분여를 숙고하더니 176으로 물러선다. 그의 '빠른 손'은 맹목적인 게 아니라 확신이 섰을 때에만 결행됨을 알 수 있다.

188까지 우변에서 패(覇)가 났다. 그 와중에 좌상귀를 또 건드려 본다. 그쪽은 흑이 한 수 늘어진 '빅 패'의 형태지만 흑이 팻감을 당할 수 없다. 194를 잠시 응시하던 고노린이 손을 들어 계시원의 초읽기를 제지한다. 어차피 백이 패를 양보해도 패배를 면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 오후 4시15분. 꽤 이른 종국이었다. (193…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