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일상이 이렇게 섹시해도 되나?

화가 노석미씨가 서울 동숭동 갤러리정미소에서 17일까지 《상냥한 습관》전을 열고 있다. 그 이름은 모르더라도 정작 그림을 보면 친숙해 하는 이가 많을 줄 안다. 그만큼 이 작가는 1990년대 말부터 순수미술 영역뿐 아니라 영화잡지 《씨네 21》 등 다양한 출판물에서 독특한 미감의 일러스트를 선보여 왔다.

그러나 더 큰 이유가 있다. 노씨가 90년대 중반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현재까지 일관되게 내놓은 작품은, 일상의 자잘한 양상을 언뜻 어눌하면서 만화적인 필치와 원색 또는 부조화의 색채를 통해 포착한 드로잉과 회화가 대부분이다. 그림일기처럼 누구나 '쓱'하고 그릴 수 있을 법해 보일 텐데, 지난 세기말 이래 이런 회화가 젊은 대중에게 어필하면서 지속적으로 유행이다. 노씨의 그림이 사람들 눈에 익숙한 것은 이 유행 경향이 한국에서 본격화할 즈음 작가가 활동을 시작했고, 그간 우리의 미적 취향이 여기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취향의 형성에는, 2005년 로댕갤러리 개인전으로 대박을 터트린 일본작가 요시토모 나라의 '못된 아이들' 그림,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 삽화 작업을 한 안자이 미즈마루의 '심플 라이프' 그림 등이 한몫을 했다. 또 벨기에의 뤽 튀망(Luc Tuymans)이나 영국의 게리 흄(Gary Hume)처럼 영상 시각이나 대중문화 이미지를 차용한 회화가 여기 젊은 화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동서양 회화사의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이 그림 속에서 아름답고 고귀하며 숭고한 것을 보았던 전통과는 딴판으로, 이제 전시장을 찾는 관객 눈에 들어오는 그림들의 풍경은 이렇다. 사소하고 세속적이며 어쩌면 구차해 보이는 삶의 파편들. 노씨의 《상냥한 습관》전에서 그 그림의 풍경은 이를테면 요즘 제빵학원에 다닌다는 작가가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는 손만 클로즈업한 이미지로 떠오른다. 또는 키우고 있는 고양이가 강아지 몸에 올라탄 모습을 그린 〈당신은 알고 보니 퍽 귀엽네요〉에서 보듯, 퍽 기묘하면서 섹시하다.

그렇다면 아크릴 물감으로 별로 공들이지 않고, 눈앞의 일들을 깊은 생각 없이 그린 듯 보이는 이 그림들이 의미를 획득하는 지점은 어디일까? 그것은 아마 그 '쉬워 보임'이 상냥하게도 새삼 감상자에게 '그림 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그림들은 작가가 자신을 둘러싼 주변 공간, 삶의 모습, 몸의 경험들에서 가장 디테일한 부분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그 감각을 화면 위로 술술 풀어낸 위력의 산물이다. 그러니 관객은 갤러리에 걸린 크고 작은 그림들에서 특별한 것 없는 세상의 세부 이야기를 눈으로 솔솔 듣는 것이다. (02)743-5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