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계영배(戒盈杯)

〈제8보〉(99~115)=계영배(戒盈杯)라고 들어 보셨는지? 직역하면 '가득 참을 경계하는 술잔'쯤 된다. 일정량 이상을 부으면 술이 사라지도록 설계된 잔이다. 지나친 욕심을 떨치라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과욕의 폐해가 바둑만큼 극명하게 드러나는 세계가 또 있을까. 이기고 있어도 뭔가 될 듯싶으면 못 참고 결행하고, 기어이 되치기에 걸려 땅을 치는 게 바둑이다.

흑이 ?에 젖히자 백은 받지 않고 ?로 치중해 왔다. 웬만한 아마추어들이라면 쩨쩨하게(?) 99로 받지 않고 즉각 115에 젖혀가고 싶다. 귀를 깨면서 한 집을 더 내면 되니까.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계영배의 유혹에 빠지는 길이었다. 참고1도 6까지, 좌변 흑말은 순식간에 자체 삶이 사라지는 것. '돌다리를 두드리고도 안 건넌다'는 이창호가 이런 꼬임에 말려들 리 없다. 105까지 일단락. 아무튼 백은 102, 104를 챙겨 하변 입체화라는 명분을 얻어냈다. 105로는 참고2도로 변화할 수도 있었다. 백 귀를 유린하며 산 결과. 그러나 큰 곳이 많아 굳이 서둘 필요가 없다는 게 흑의 판단이었다. 과연 결국엔 115에 손이 돌아오지 않았는가. 이창호가 애용하는 술잔은 혹시 계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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