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2년 내리 웃었다

영하의 추위를 무색게 한 명승부였다. 윤찬희가 항복 사인을 보낸 후 고개를 떨구는 순간, 허영호는 패자에 대한 배려로 애써 표정을 감추면서도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장장 13시간 동안 총 다섯 판의 열전을 지켜보며 일희일비하던 검토실 광경은 더욱 극적이었다. 영남일보 선수와 관계자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환희에 빠져들었고, 신성건설 쪽은 쏟아지는 탄식 속에 망연자실했다.

영남일보가 13일 한국기원서 막을 내린 KB국민은행 2008한국바둑리그 챔피언결정 최종 3차전서 신성건설을 3대2로 제압, 2승 1패의 전적으로 우승했다. 대회 사상 처음 있는 2연패(連覇)였다. 동시에 2억7000만원 단체 우승상금의 주인이 됐다. 반면 모(母)기업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마지막 출전'을 장식하려던 신성건설은 '마지막 한 판'을 못 넘기고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며 눈물을 뿌렸다.

영남일보는 프로 1년차 강유택과 홍일점 조혜연을 3, 4지명으로 뽑는 등 출발부터 화제를 뿌렸던 팀. 시즌 초반 한때 최하위까지 처지면서 '약팀'으로 굳어갔다. 중국리그 일정중복으로 인한 기권패 사건까지 터졌다.

하지만 8개 팀 중 최연소로 구성된 영남일보 선수들의 잠재력은 갈수록 빛을 내기 시작했다. 경쟁 팀들이 어어 하는 사이에 8연승이란 대회 신기록이 수립되며 선두 질주를 시작한 것.

그 중심에 최규병 감독이 있었다. 그는 바쁜 개인 업무를 제쳐놓고 소속 선수들을 수시로 면담했다. 암암리에 사생활까지 체크하면서, 과제를 내줘 공부량을 늘리자 팀원들은 자신감이 붙으며 융화와 신뢰가 쌓여갔다. 바둑리그는 선수선발 및 관리, 그리고 오더(출전 순번) 등 3가지를 통해 한 해 순위가 결정 나는 대회. 그 전권을 감독이 쥐고 있다. 최규병 九단은 리그 2연패를 통해 그 3가지 역할을 가장 완벽하게 소화해 낸 감독임이 입증됐다.

영남일보엔 이세돌(올해 13승 3패) 같은 발군의 스타는 없다. 주전멤버들의 기량이 고른 편이어서 '기관총 사단'으로도 불린다. 윤준상(13승 5패) 허영호(12승 6패) 강유택(11승 5패) 김지석(8승 9패) 김형우(8승 5패) 등이 최다승을 합작했다. 이 때문에 이번 대회 MVP 자리를 둘러싼 '집안 싸움'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가장 유력한 최우수 후보 2명 중 윤준상은 팀내 최다승이 돋보이고, 허영호는 최종전 최종국을 이겨 '화룡점정'을 이뤄낸 공훈이 막대하다. 둘 모두 포스트시즌에선 3승1패씩 기록했다.

장장 9개월여 동안 계속돼 온 올해 바둑리그는 23일 메리어트 호텔서의 시상식을 끝으로 올해 일정을 마감한다. 대회 MVP 및 감투상, 신인상 등도 기자단 및 인터넷 투표를 거쳐 이날 함께 발표될 예정. 3·4위는 제일화재 및 월드메르디앙에 돌아갔다. 2009 바둑리그는 내년 3월 시작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