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도자기엔 '한국과 독일'이 절반씩 녹아 있죠"

내로라하는 독일 작가들도 명함을 내밀기 힘들다는 이 미술관에서 순수미술도 아닌 도자기로 전시회를 연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이씨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2006년에도 이곳에서 1111개의 사발을 바닥에 흩어 놓고 전시회를 열었다. "이곳 관장이 우연한 기회에 제 도자기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전시회를 하자고 하셨죠. 마이센, 드레스덴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자기들이 있는 독일에서 한국인인 제가 도자기로 인정받았다는 것이 참 자랑스러웠어요."

수도여자사범대 생활미술과를 졸업한 이씨는 1972년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외국의 도자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딸의 소망을 들은 어머니가 파독 간호사를 자원해 유학 비용을 댔다. 비스바덴 예술대학에서 도자기를 공부하고 1977년부터 2년간 하이델베르크에서 동양미술사와 중국학 등을 배웠다. 학교를 마치면서부터 개인 공방을 운영하며 '잘 팔리는 작가'가 되었지만, 독일 생활이 결코 녹록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제 도자기를 독일 것이라고 하고, 독일 사람들은 한국 것이라고 했죠. 정체성의 혼란, 그런 게 참 힘들었지요."

빨리 기술을 습득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 하이델베르크에서 만난 독일인 교수의 한마디가 그에게 큰 용기를 줬다. "중국학을 공부하는 분이셨는데 자신은 당시(唐詩)를 통해 괴테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고 하셨죠. 문화라는 것은 결국 하나로 통하게 되어 있다고요."

독일에 남기로 결정한 그는 1986년, 바우하우스 시대에 만들어진 에센의 유서 깊은 생활도자기 전문공방 '마르가레텐회에(Margaretenh?he)'의 공동책임자가 됐다. 1993년 이 공방의 단독 책임자가 됐으며 2006년엔 공방을 완전히 인수했다. 현재 그의 도자기는 유럽 각지와 일본으로 수출되며, 독일의 몇몇 성당에서는 미사용 성배(聖杯)로 그의 도자기를 사용하고 있다.

"수행을 한다는 생각으로 물레질을 합니다. 제가 좋지 않은 기분으로 만든 도자기로 다른 사람이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한다면 죄를 짓는 셈이지요. 남들은 저보고 '예술가'라고 하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제가 '도공(陶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란 그저 타이틀일 뿐 직업인을 일컫는 말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