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 조인성, 부수고 싶다"

'남자 배우가 벗었다?' 이 문장 하나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영화배우 조인성(27)은 그런 사람이다. 고운 얼굴 선과 화사한 웃음을 무기로 하는 '잘생긴 배우'의 대표적인 톱스타. 하지만 18일 삼청동에서 만난 조인성은 그 난해한 메소드 연기론을 힘주어 거론할 정도로 심각한 모습이었다. 30일 개봉 예정인 '쌍화점'에서 그가 보여줬던 파격적인 연기만큼이나 그의 내면에 뭔가 변화가 일어난걸까.

―유하 감독작 '비열한 거리' 이후 2년 만이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동성애, 이성애 장면 때문에 고심했을 텐데.

"셰익스피어 작품 같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의 이전 작인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보면서 영화 속 정사신이 '베드신을 위한 베드신'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이기에 한번쯤은 거쳐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쌍화점'은 고려 말기 공민왕대를 배경으로 왕(주진모)과 호위 무사 출신 홍림(조인성), 몽골인 왕후(송지효)와의 엇갈린 운명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호위 부대 건룡위의 수장 홍림은 왕의 후궁을 임신시키고 왕을 시해한 고려시대 실제인물 홍륜 등을 모티브 삼았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이나 '봄날'에서처럼 막내 아들 이미지만 보여준다면 금방 질리지 않겠느냐. 불교에 '아상(我相·나에 대해 집착하는 생각)을 깨라'는 말씀이 있다. 언제까지나 '스타 조인성'에 머무를 순 없지 않은가. 예상보다 많은 기대를 받으니까 심하게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것 같아 두렵다. 난 그동안 이런 기대를 받으며 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다."

―변신이 달갑지 않은 팬도 있을 것이다.

"나를 비롯해 흔히 말하는 '꽃미남'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에게 씌워진 편견을 깨고 싶었다. '기분 좋은 배신'을 하게 되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보기 좋게 소비되는 건 즐거운 일 아닌가."

―덕분에 동성애자라는 소문까지 나오지 않았나.

"비 맞기 싫으면 집에서 나오지 말아야지. 일단 나오게 되면 우산을 쓰더라도 빗물은 튈 수밖에 없다." (그와 절친한 고현정이 2년 전 "비 오는 날 비 안 맞으려면 나오지 말아야지"라고 언급한 게 연상된다.)

―그래도 연예인이 좋은가?

"작품에서 대리 만족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나뿐 아니라, 광고주, 내가 벌인 일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최근 출연한 커피 광고는 공포 버전으로 패러디됐다.

"패러디엔 '존경'의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혹 오마주 아니냐' 했더니 '패러디'가 맞다고 했다). 어떤 분들은 음악만 바꿔서 날 '사이코패스(psychopath·정신병자)'로 바꿔 주셨다. 내 안의 다른 면을 발견한 것 같아서 오히려 기분 좋다. 영화를 찍다가 광고를 촬영했는데, 홍림의 치열한 눈빛이 광고에 반영된 것 같다."

―이 영화 속 홍림은 감정의 극단을 달린다. 복수심에 왕에게 칼을 들이대야 했을 정도로.

"우리 영화에선 사랑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정체성을 몰랐던 홍림은 왕이 지정한 대리 합궁 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성장해 나간다. 베드신에서도 여러 체위나 다양한 욕정의 모습보다는 감정에 더 중심을 실었을 만큼 감정 움직임에 충실한 영화다."

―영화 주인공처럼 삼각 관계 등의 사랑과 질투의 감정을 느껴 본 적 있을 텐데.

"난 전형적인 '메소드(method)' 연기자(러시아 연극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가 개발한 연기법. 배우가 완전히 극중 캐릭터가 되는 내면 연기)다. 날 투영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내년 1월 군대를 간다. 다녀오면 서른이다.

"돈, 명예, 직업, 꿈 이런 것들에 대한 혼돈과 고뇌, 갈등, 책임감에 머리 아픈 시기다. '멘토'? 그보다는 '솔 티처(soul teacher)'나 '솔 메이트'를 통해 정신을 다잡는다. 친구들까지 포함해 5~6명쯤 된다."

―말투가 원래 이런가. 책을 많이 보나.

"요즘 활자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 대사를 장악하기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