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한 복판에서 한 남자가 갑자기 눈이 멀었다. 이어 의사 한명도 시력을 잃었다. 그렇게 점차 모든 사람들이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딱 한명의 여자를 제외하고.
허무맹랑하고 파격적인 설정은 인간의 껍질을 벗긴다. 정보사회의 이기도 쓸모없어지고, 규칙들도 무너진다. 그들은 이제 태초로 돌아가 역사를 새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주제 사라마구의 동명소설 < 눈먼 자들의 도시>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원작을 뛰어넘는 작품은 보기 드물다는 이야기가 있듯 이 영화 역시 소설을 먼저 읽은 사람들에게서는 그리 좋은 평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벌거벗은 인간들의 삶]
그러나 영화는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만들면서 사람이 가진 본능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관객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웠을 수도 있다.
눈먼 자들의 단체생활을 엿보자. 그들은 한 수용소에 모이고, 자연스럽게 세 그룹으로 나뉘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대표를 선출하며 그들 나름대로의 규칙을 제정한다. 사람들은 의식주라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한 집단에서 반발이 생기고 급기야 폭력적인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게 된다. 세 번째 집단의 대표는 '총'이라는 무기를 들고 사람들을 위협하며 권력을 쥔다. 그리고 먹을 것을 원하면 금품과 여자를 바치라고 요구한다. 이때부터 서로가 살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관객은 처절하게 벗겨진 인간을 보며 불쾌함을 느낀다. 이것은 홍상수의 영화를 보며 느끼는 불편과 일맥상통한다. 홍상수는 그의 영화 < 해변의 여인>을 통해 밑바닥 인간을 가감 없이 재연했다. 관객은 주인공 중래와 문숙 등을 보면서 배를 잡고 웃지만 결국 그것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즉 자신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 바라보게 된다.
또한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단 현명의 눈뜬 자이다. 그 사람은 여자(배우 줄리안 무어)다. 영화는 과거로 돌아가되, 새로운 리더를 여성으로 내세운다. 그러고 그녀가 가진 따뜻함과 사랑을 구원으로 삼는다. 수용소에서 그녀가 횃불을 들고 폭력적인 대표를 찾아가는 모습 들라크루아의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그림과 흡사하다. 자유에 대한 열망을 나타낸 그림처럼, 그녀 역시 사람들을 지도해 나간다. 그리고 눈먼 자들은 그녀 뒤를 줄지어 따라간다.
눈뜬 자는 눈먼 자를 통해 무엇을 보았을까. 감독은 관객들을 향해 '당신들은 지금 눈먼 자인가, 눈뜬 자인가?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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