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요소(要所) 113

〈제9보〉(102~113)=똑같은 프로기사라도 공부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박영훈은 실전보다는 주로 빠른 속도로 남의 기보를 놓아보는 유형. 한 판 검토하는 데 약 15분쯤 걸리며 하루 평균 20판 정도를 연구한다. 이것만 해도 5시간이 소요되는 셈. 분당 유창혁 도장에 가면 대국이 없는 날 박영훈이 나와서 혼자 열심히 기보를 놓아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흑이 ?로 하변을 정비한 장면. 백은 여기서 참고도 1로 흑 2점을 잡는 게 크지만 대신 흑 2를 각오해야 한다. 다음 A와 B(흑이 둔다면 C)를 맞봐 이것은 흑 우세의 진행이다. 그래서 102의 삭감을 서둔 것. 대신 좌하귀 백은 시달림을 각오해야 한다. 과연 박영훈은 107까지 챙길 것 다 챙기면서 백의 안형(眼形)을 추궁하고 나섰다.

백은 왜 108에 앞서 먼저 113 자리 한 방을 아꼈을까. 그것은 흑이 '가'를 선수하고 손을 빼 112에 젖혀오는 것이 겁난다. 113 같은 곳을 선수로 두들길 수 없다면 백으로선 엄청난 비극이다. 결국 113 자리엔 흑기가 꽂혔다. 꼿꼿이 선 이 한 수로 거대한 중앙 백세는 빛을 잃었고 좌하 백은 아직도 불안하다. 102 한 점도 갑자기 외로워진 느낌. 박영훈의 눈부신 솜씨가 반상을 휘몰아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