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왕초와 똘마니

〈제13보〉(152~163)=다시 '빵때림'의 위력을 논해보자. 백은 일찍이 중반전 초입 상중앙에서 흑 3점을 따낸 후 그 위세를 천지 사방에 떨쳤었다. 중원에선 도무지 흑에게 단 한 마디의 발언권도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백은 흡사 험악한 인상의 깡패였고 흑은 힘 없는 민초인 양 중앙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 바둑의 '중원 잔혹사'였다.

흑 ?는 중앙을 강화하는 희생타 전법. 끝내기 차원에선 별 소득 없는 수순이다. 하지만 흑은 이 무렵 '동네 깡패'를 혼내줄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157까지 좌중앙에 검은 페인트를 뿌리더니 우중앙에서 159, 161로 또 한번 그물을 쳤다. 160은 참고도 1이 정수. 단, 그렇게 두었어도 10까지 아래 흑 3점의 퇴로가 막혀 패(覇)는 피할 수 없다.

아무튼 163으로 흑의 음모가 만천하에 실체를 드러냈다. '왕초'를 믿고 하중앙 쪽에서 거들먹거리던 '똘마니' 셋을 감금하고 나선 것이다. 10여 수 전만 해도 백의 위세에 눌려 중앙에선 숨조차 못 쉬던 흑군의 분연한 궐기다. 과연 중원의 왕초는 흑의 저지선을 뚫고 '똘마니 셋'을 구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