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바둑 쇼' 개봉박두

세계바둑계 지존은 누구냐. 최강국은 과연 한국이냐, 중국이냐. 전세계 바둑 팬의 해묵은 궁금증들을 한꺼번에 풀어줄 빅 카드들이 신년 벽두부터 시리즈로 펼쳐진다. 6일 개막될 도요타덴소배 3번기를 신호탄으로 국제대회 결승전이 올해 상반기 내내 줄을 잇는 것. 사상 유례가 없었던 '바둑 쇼' 개봉에 앞서 '중복 출연'할 이창호 이세돌 구리(古力)의 입장에서 예고편을 감상해 본다.

〈이창호〉

내겐 현재 메이저급 세계타이틀이 없다. 4년 전 춘란배 우승 이후 마이너 대회인 중환배 하나에만 의지해 왔다. 23회 세계제패로 최고기록을 갖고 있는 내가 벌써 늙었다고? 한국식 나이로 따져도 이제 고작 35세가 됐을 뿐이다. 지난 4년간 다섯 번이나 거듭됐던 준우승 악몽을 떨치고 올해는 꼭 뭔가를 보여주겠다.

세계 최고상금(40만 달러)이 걸린 잉씨배는 내가 8년 전 중국 창하오(常昊)를 꺾고 한 차례 품에 넣었던 타이틀이다. 이번 대회선 준결승서 이세돌을 제쳤더니 최철한이 막아섰다. 10살 아래 철한이에겐 현재 21승 19패까지 쫓기는 중이다. 작년 승률 1위로 기세 등등하게 메이저 첫 우승을 노리고 있지만 반드시 이기겠다.

춘란배 상대는 한때 나의 세계 우승행진 도우미로 불리던 창하오다. 하지만 2007년 삼성화재배 결승 때는 내가 0대2로 보기 좋게 당했다. 통산 21승 8패로 앞서있다고 방심할 수 없는 이유다. 국가 단체전인 농심배에서도 그를 만날 텐데, 작년 중국에 넘어간 우승컵을 꼭 되찾아 오고 싶다.

〈이세돌〉

한·중 양국의 주도권싸움 와중에 두 대회서 중국 기사와 결승전을 가질 내 책임이 누구보다 크다. 내가 결승에 올라간 기전들은 모두 현재 내가 보유 중인 타이틀이다. 2개 대회 2연패(連覇)를 꼭 이루고 싶다. 지금까지 열 한 차례 국제대회 우승을 해 봤지만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나와 구리와의 LG배 결승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는 걸 안다. 한·중 양국 랭킹 1위끼리의 대결이란 점, 83년생 동갑이란 점, 데뷔 연도(95년)까지 같다는 점 등이 시선을 끌기 때문일 것이다. 2005년 이후 공식 대결에서 3연패 중인 빚을 이번엔 꼭 갚고 싶다.

삼성화재배에선 쿵제(孔杰) 七단과 맞선다. 나보다 한 살 위인 쿵제는 춘란배에도 4강까지 오르는 등 요즘 잘나가고 있다. 내가 3승 1패로 앞섰지만 대부분 묵은 전적이어서 믿을 게 못 된다. 삼성화재배에선 8강전 때 이창호 사범님 앞길을 막아 선 바 있어 특히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구리〉

새해 첫 테이프를 끊는 도요타덴소배에서 첫 단추를 잘 끼는 게 급선무다. 상대인 박문요(20) 五단은 급성장 중이지만 같은 중국 기사(조선족)이므로 큰 부담은 없다. 결국 초점은 이세돌과의 LG배 결승 3번기다. 내가 생각해도 그와 나는 이 시대 최고의 라이벌인 것 같다.

이세돌에겐 지난해 중국리그에서 뼈아픈 1패를 기록했다. 역대 공식전에선 내가 4승 3패로 앞섰지만 중국리그에선 3승 4패로 뒤졌다. 7승 7패란 통산전적이 짜릿한 전율을 안겨준다. 나의 국제대회 총 우승횟수는 3회로 중국기사들 중 가장 많지만 이세돌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그러나 나는 현재 후지쓰배와 춘란배를 보유 중이다. 상반기에 왕관을 벗게 될 춘란배를 빼더라도 최대 3관왕까지 오르면 현역 세계 최다관왕이 된다. 지난 10년간 한국에 휘둘려온 중국의 자존심을 내 손으로 찾고싶다. 농심배에서도 나와 창하오가 힘을 합쳐 이창호·이세돌의 한국을 제치고 2연패를 일궈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