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허허실실

〈제3보〉(28~33)=소 걸음은 느려 보여도 능히 천리를 간다(牛步似遲 能致千里). 김형우(21)는 소띠는 아니지만 기풍은 황소와 똑 닮았다. 과묵한 성격 그대로 두텁게 따라가며 끈끈하게 버티는 힘이 일품이다. 지난 한 해 성적(35승 16패)은 230여 프로들 중 다승 부문 20위, 승률 부문 9위. 톡톡 튀는 재기(才氣)보다 진중한 끈기의 소유자가 오랜 생명력을 보인다는 점은 바둑의 주목해야 할 특질 중 하나다.

?에 28로 막아선 것은 침입군을 쉽게 안정시켜주지 않겠다는 뜻. 참고 1, 2도를 보면 의미가 확실해진다. 28때 흑도 '가'로 삼삼을 파면 살 수는 있지만 외곽이 백의 철벽이 된다. 그렇다고 '나'로 나가는 것은 백에게 '가'를 빼앗겨 근거 없이 쫓기면서 귀와 좌변을 모두 무혈점령당할 가능성이 많다.

29를 놓기까지 8분이나 소요된 것은 이런 변화들이 모두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 아무튼 백은 30의 요소를 차지해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흑은 31로 짐짓 하변을 확장하는 척하면서 '다'의 침투를 엿보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은 감연히 32로 뛰어들었고, 흑도 즉각 33으로 퇴로를 막아섰다. 허허실실의 공방 속에 바둑은 본격적인 전투모드로 접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