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후회(後悔)의 한 수

〈제4보〉(33~44)=차세대 선두주자로 촉망받던 구리가 2007년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것은 자신을 바둑의 세계에 이끌어준 부친의 타계 때문이었다. 작년 후지쓰배 정복으로 긴 터널을 빠져 나온 그는 "우승컵을 아버지 영전에 바친다"며 울먹였다. 그런 뒤 도요타덴소배 및 LG배 결승에도 연거푸 올랐다. "큰 욕심 내지 말고 1년에 세계 대회 1~2개만 우승하면 된다"던 부친의 격려를 충실히 이행한 것. 바둑만큼 부자(父子) 친화적인 게임이 또 있을까.

33으론 참고 1도 1의 붙임이 더 강력할 것 같지만 12까지 쉽게 안정한다. 느슨한 공격이 때론 더 위력적이란 사실은 음미할 만하다. 바둑 돌은 생명체와 같아서 쫓기다가도 몸끼리 부딪치면 묘한 반탄력을 쏟아내곤 한다. 34는 기대기 전법. 35는 당연한데, 이때 36을 선수한 것이 의문의 한 수였다.

"36으로는 참고 2도의 수순으로 사는 방법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 그림이 더 나았던 것 같다"(김형우). 참고 2도에서 백 A, 흑 B의 교환은 상당한 악수다. 따라서 38, 40의 바꿔치기는 불가피한 변신. 일단 뽕나무 밭이 바다로, 바다가 뽕나무 밭으로 변했다. 갑자기 격한 물살에 휩싸인 우하 일대 접전의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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