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차시환혼(借屍還魂)

〈제6보〉(57~62)='다른 사람의 죽은 육신을 빌려 혼(魂)을 되찾다.' 손자병법 제14계(計)에 나오는 차시환혼(借屍還魂) 전략이다. 현실 사회에선 꿈같은 이야기지만 사석(捨石)과 바꿔치기가 흔한 바둑에선 이런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장고 9분 만에 57로 끊었다. 백도 8분여의 숙고 끝에 58. 그러나 이 두 수의 교환에서 이 바둑의 운명이 갈렸다. 구리는 "이게 웬 떡이냐" 하는 표정으로 즉각 59에 뻗는다. 이제 참고1도 1로 막는 것은 흑 2 이하 8까지의 수순으로 백이 잡히는 진행. 할 수 없이 60으로 오른쪽 흑 4점의 준동을 예방했지만 61에 뻗으니 우하귀 백 5점이 졸지에 차단됐다. 물론 백이 대 손해인 교환이다. 위기에 빠졌던 흑으로선 그야말로 '차시환혼'의 횡재였다.

뭐가 문제였을까. 김형우는 국후 58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참고2도 1, 2를 선수 교환하고 3, 5로 뛰쳐나갔어야 했다는 것. 이것이라면 백이 우하 백귀를 짭짤하게 지켰고 우변 흑은 여전히 부담을 안고 있어 백이 우위에 섰을 것이다. 하지만 하변에 맛이 있다면 아직 백이 절망하기는 이른 형세. 62로 반격의 나팔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