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영화팀의 금주의 선택] 막막한 현실 먹먹한 모성 묵묵한 연출

'체인질링(Changeling·바뀐 아기)'은 거북할 만큼 불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이가 사라졌고 경찰은 엉뚱한 아이를 데려온다. 내 아이가 아니라고 절규하는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갇힌다.

이것은 1928년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그때 미국 경찰 권력은 도저히 어찌 해볼 도리 없는 거대한 옹벽이었다. 관객은 아이 어머니인 크리스틴 콜린스(앤젤리나 졸리)에게 감정을 이입하기 어렵다. 어떻게 경찰이 시킨다고 남의 아이를 내 아이인 척할 수 있단 말인가. 난데없이 크리스틴을 엄마라고 부르는 꼬마는 도대체 어쩌자고 그러는 걸까.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연출법은 둔하게 보일 만큼 우직하다. 기교도 없고 반짝임도 없다. 해변에서 100년 넘게 자란 금강송을 베어다가 대패로 깎고 요철(凹凸)을 만들어 집을 세우듯, 그의 영화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주의 깊게 진척된 노동의 산물이다. "싸움을 걸진 않되, 마무리는 내가 한다"는 주요(하지만 신선하진 않은) 대사는 그에게 여전히 '석양의 무법자' 아우라가 남아 있음을 입증한다.

경찰이 데려온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님을 호소하는 크리스틴의 노력은 너무나 상식적이다. 그녀는 아이 키가 오히려 줄었고 교실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며, 하지 않았던 포경수술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일련의 연출작품에서처럼 보수적이고 상식적인 가치에 대한 집념을 견지한다. 그가 배우로는 드물게 '존경받는 공화당원'인 이유이기도 하다.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일하는 전화 교환원, 실제 그 당시 생산된 자동차를 구해 찍은 장면들은 소소한 볼거리다. 앤젤리나 졸리는 정말 아이를 잃은 엄마처럼 홀쭉하게 마르고 눈이 푹 꺼진 채 호연했다. 살인마 역의 제이슨 버틀러 하너는 이 영화가 발굴한 또 하나의 '선하게 생긴 악역'이다. 다만 크리스틴을 돕는 목사 역(존 말코비치)은 아무래도 캐스팅 실수 같다. 선한 역을 맡기엔 그의 입이 너무 작고 눈매도 사납다. 차라리 나쁜 경찰 역의 제프리 도노반과 바꿨으면 나을 뻔했다. 22일 개봉.


▶줄거리

1920년대 미국 LA 경찰은 부패하고 무능하다. 혼자 사는 여성 크리스틴 콜린스가 아이 실종 신고를 하자, 경찰은 이 사건을 오명을 씻을 기회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몇 달간의 수사 끝에 경찰이 데려온 아이는 전혀 다른 사내아이. 크리스틴은 "내 아이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경찰은 "아이들은 금방 자라서 몰라볼 수 있다"며 윽박지른다.


▶전문가 별점

풍요로운 시대로 알려진 1920년대 미국 서부의 부패상과 인간에 관한 묵직한 드라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농익은 연출. ★★★★☆  이상용·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