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으로 만든 영화… 세상이 알아주다

다음 달 5일 개봉할 '낮술'은 표창이라도 줘야 할 것 같다. 제작비는 단 1000만원. 알음알음으로 모인 10여명의 스태프가 13일간 겨우 11번 촬영으로 만든 작품이다. 서울독립영화제에 이어 전주 영화제에 소개되더니 로테르담 영화제, 테살로니키 영화제 등에서 호평을 받았다. 또 극장 문을 나설 때의 그 상쾌함이라니.

그러니 노영석 감독(33)에게 '한국의 로드리게즈'란 별명이 붙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쿠엔틴 타란티노 이후 가장 각광받는 미국의 저예산 영화 감독.

실연당한 한 청년이 강원도행을 택하면서 벌어지는 예상밖의 경험을 담은 영화 '낮술'은 언제 어디서든 술 한 잔만 있으면 만사 'OK'인 애주가를 향한 권주가(勸酒歌)이자, 술과 여자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무리들에 대한 유쾌한 경고문이다. '락(落) 스피릿'을 '락(樂) 스피릿'으로 바꾸어 주는 감독과 그 영화다.


◆落(락) 落 落 落

고등학교 때 세운 10년 계획에 따르면 그는 서른 살에 '메탈리카'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악보를 못 봤다. 방향을 바꿨다. 고 2때부터 배운 미술 덕에, 서울대 미대 공예과에 합격했다. 음악을 버릴 순 없었다. 자작곡을 담은 CD를 온갖 기획사에 돌렸다. "연락 오는 데가 하나도 없었어요. 인정하긴 싫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능력 없다는 걸 알았죠."

그의 인생 계획 속엔 '32세엔 영화 감독'이란 것도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했다. 당선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들어있었다. '열심히 하니까 다 되는구나.' 그런데 제목이 낯설었다. 다시 이름을 봤다. '노.동.석.' 또 실패였다.(노동석 감독은 유아인 주연의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를 찍었다. )

"에라. 모르겠다. 그냥 찍자." 부산 영화제 출품 시기에 맞춰 2007년 1월에 '낮술'을 찍었다. 백수인 그에게 부산에서 먹는 회 한 접시와 소주는 '로망'이었다. "(영화제 출품이)안됐어요. 난 찍어도 안 되는 놈이구나 했죠."

◆樂(락) 樂 樂 樂

'백수'였지만 돈 버는 재주도 있었다. "대학 다닐 때 인터넷 거품으로 이벤트가 많았어요. 커뮤니티 만들어 사람 많이 모으면 1등 100만원 2등 99만원 이렇게 상금을 줬죠." 그가 만든 '미소녀 사진방'에는 사람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이런 식으로 약 1000만원을 벌었다. 음악 작업을 위한 반 지하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제목 짓기'는 그의 특기. "돈이 없어 낮에 촬영을 끝내려다 보니 '낮'이란 단어가 필요했어요. 또 영화 내내 술 장면이 이어지다 보니 '낮술'이라고 하면 애교로 봐주실 것 같았죠."

1개월 만에 완성한 시나리오. 개봉은 꿈도 꾸지 못했던 그의 첫 작품이 로테르담 등 세계 여러 영화제에 초청된 뒤 드디어 다음 달 5일, 한국 관객을 만나게 됐다. 이쯤 되면 그의 살림은 좀 나아졌을까? "제가 어머니가 하는 냉면집에서 밤마다 육수를 뽑아요. 거기서 아르바이트비 받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되죠." 어머니가 하는 냉면집의 냉면 가격은 2500원. 영화나 음식이나 저렴한 수작(秀作)을 만드는 게 이 집안 특기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