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한 김강우의 발칙한 반전

"전, 핫 초코 주세요."

삼청동 카페 한구석에서 메뉴판을 꼼꼼히 보던 김강우(31)는 달착지근한 음료를 골랐다. 몇 달간 극심한 다이어트와 운동을 통해 근육질 몸매를 만들었다기에 그의 선택은 의외였다.

"영화 끝났으니 다 먹을 수 있어요. 살 것 같네." 의도한 건 아닐 테지만 단추를 풀어헤쳐 벌어진 셔츠 사이로 가슴팍이 드러났다. 3개월 동안 사람과의 만남도, 음식의 유혹도 끊고, 우울증에 걸려가며 만든 초콜릿 복근 때문일까. 그는 즐겁게 복수하듯 '핫 초코'를 들이켰다.

다음 달 5일 개봉할 영화 '마린보이'에서 그가 연기한 천수는 도박 빚에 몰려 마약 운반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전직 수영 선수다. 배역에 몸을 맞추는 건 '고문'이었다.

"타이틀 자체가 '마린보이'잖아요. 비주얼이 어설프면 영화도 끝이라고 생각했죠."

상의를 벗는 장면에선 전날부터 물 한 모금 먹지 않았다. 타는 듯한 목마름에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기운이 없을 땐 초콜릿을 한 조각 천천히 녹여 먹었다.

그가 연기한 천수는 대사에도 여러 차례 반복되지만 '젊음'이라는 단어 하나를 무기로 내세우는 껄렁한 양아치다. 일부러 그런 이름을 붙인 건 아닐 테지만, 발랄함으로 치자면 축구 선수 이천수의 말투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캐릭터의 가벼움에서 짐작하겠지만, '목숨을 건 마약 운반, 마린보이는 다 죽는다'라는 홍보 문구와 달리 이 영화는 '세븐데이즈' 같은 스릴러보다는 경쾌한 반전을 거듭하는 '타짜'의 유희성에 더 가깝다.

그가 온화한 표정으로 핫초코를 시킬 때만 해도 음식 솜씨 좋던 착한 청년 성찬(영화 '식객')이 떠올랐는데 어느새 그는 3류 인생 천수로 변해 있었다. "말투가 생각보다 가볍다"고 말하자 그는 "칭찬"이라며 좋아했다. 팬들이 "어, 김강우다!" 하는 것보다 "성찬이다" "천수다"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만큼 연기를 훌륭히, 성실히 해냈다는 방증이라고.

"'인간 김강우'의 색깔이 뭔지 모르겠다"고 하자 이렇게 받아친다. "천재가 아니고, 세기의 꽃미남이 아닌 이상 한 5년은 자기 색깔을 찾아가는 단계 아닌가"라고. 이런 평범함이 자기를 내면의 상처에 갇힌 형사(영화'가면'), 착한 요리사(식객), 청춘의 아이콘(태풍태양) 등 여러 가지 틀에 맞게 변신시켰다고 했다.

그런 관점에서 '배우 김강우'에겐 합격점을 줘야겠다. 제 이름을 버릴 수 있을 만큼 캐릭터에 푹 빠져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김강우는 그런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