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품' 한다니까 다들 웃더군요"

"제 눈이 고마워요. 제 눈은 30년 동안 컬렉터로서 성공할 수 있게 해줬고, 지금은 제 그림이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해주니까요."

버스터미널 사업가에서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터로 변신했던 김창일(58) 아라리오 회장이 이번에는 작가로 변신해 개인전을 갖는다. '씨 킴(CI KIM)'이란 예명을 사용한 이번 전시는 3월 29일까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린다.

천안 버스터미널을 운영하던 김씨는 1977년 서울 인사동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고 이듬해 청전 이상범 작품을 구입하면서 미술품 컬렉터의 길에 들어섰다. 처음엔 화랑에 들어가도 환대받지 못하고 '천안 졸부'란 소리를 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3000여점이나 되는 작품을 사들였다. 그 중 상당 수는 산 값에 되팔 수 없을 정도로 실패를 겪기도 했지만 대미언 허스트와 키스 해링, 앤디 워홀 등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사들이면서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컬렉터로 부상했다. 2003년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김 회장이 영국의 유명 컬렉터 사치를 밀어내고 대미언 허스트의 유력한 후원자로 나섰다는 기사를 실었다. 2006년에는 세계적인 미술 전문지 '아트뉴스(Artnews)'가 선정한 세계 200대 컬렉터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김씨는 1999년 뭔가 억누를 수 없는 힘에 끌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부인이 "당신 미쳤냐"고 했고, 주위의 빈정거림도 많았지만 붓을 놓지 않았다.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무지개 만들기(To Make a Rainbow)'. 간디를 비롯해서 매릴린 먼로와 반 고흐의 모습을 파스텔과 유화로 그린 뒤 썩힌 토마토와 쇳가루를 발랐다. 경쾌한 파스텔 그림 위에 그려진 암적색의 토마토와 쇳가루로 독특한 분위기의 추상화가 되었다.

김씨는 전시장 입구에 전시된 낡은 가스레인지를 자신이라고 소개했다. 천안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업가 중 한 사람이며, 손꼽히는 컬렉터인 그가 뭐가 부족해 버려진 레인지에 자신을 투사했을까. "제가 작품을 한다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멸시하고 비웃는지 모릅니다. 작가로서 비참함이 이 버려진 것과 비슷해 주워왔어요."

김씨는 아직 작품에 정식 사인을 하지 않아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작가 '씨 킴'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던졌다. "노력해서 언젠가는 높은 산(유명 작가)에 올라갈 겁니다. 그리고 50년 뒤에는 제가 했던 선택이 인정받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