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가 주름 싫지만 삶은 원래 주름투성이"

30년 전과 별로 다른 것도 없어 보였다. 약간 처진 듯한 눈매, 장밋빛 발그레한 볼,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 스타일도 영화 '라 붐'(1980)의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눈가에 약간 자리잡은 주름을 제외하곤. 주얼리 브랜드 '쇼메(Chaumet)' 홍보차 9년 만에 한국을 찾은 프랑스 여배우 소피 마르소(Marceau·43)와 11일 만났다.

―'라 붐' 이후 많은 남성들의 이상형으로 꼽히고 있어요.

"그땐 겨우 14살이었어요. '아이(child)'였죠. 절대 '여성(woman)'이라 부르지 마세요. 그만큼 순수하고 깨끗했어요.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지고, 많은 걸 알게 되지만 그만큼 속세에 물들어 가게 되죠. 관건은 언제나 정직하고, 순수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지니도록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것이죠."

―흔히 말하는 길거리 캐스팅이었죠. 일찍 데뷔해서 스타가 됐고, 그 흐름에 따라 그냥 배우로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릴 땐 꿈이 많았죠. 건축가도, 안무가도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사람이 원한다고 해도 동시에 모든 걸 성취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대신 여러 분야에 조금씩 참여하면서 자신의 꿈을 조금씩 실현하는 것이죠. 전 그냥 제 믿음에 따라 살았어요. 무슨 성공이나 영광을 좇아서 달려온 건 아니에요. 결과적으로 제가 영화배우로 성공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죠."

―언뜻 보니 당신은 인생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폴란드 유명 감독 안제이 줄랍스키와 결혼했었고, 이번엔 사랑하는 애인('하이랜더'의 주연 크리스토퍼 램버트)과 함께 왔고, 두 아이도 있고, 감독과 작가로도 데뷔했고.

"저도 인간인데 왜 힘든 일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힘들어도 잘 분출하지 않고 스스로 극복해내는 편이죠. 그래서 전 언제나 '오케이(OK)'예요. 인생에서 가장 중시하는 건 내 아이들이 비뚤어진 삶으로 빠지지 않게, 어떻게 하면 고귀하게 살 수 있는지 가르쳐 주는 거예요. 유명인이기 때문에 더 책임감이 많아지거든요."

―몇년 전 박찬욱 감독이 칸영화제에서 당신과 작업하고 싶다고 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죠.

"그와 직접 만난 적은 없는데 무척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에요. 어떤 역할을 맡기든지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은 무척 호감 가는(불어로 'sympatique') 사람들이에요. 언어 장벽이 있지만 다른 아시아 사람에 비해 한국 사람들하고는 소통이 훨씬 쉬운 것 같아요. 무엇보다 한국인들의 영화 사랑 때문이기도 하고요."

―프랑스 출신 여배우 마리옹 코티야르는 지난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어요. 당신도 아카데미에 도전하고 싶지 않나요? 007 언리미티드(1999) 같은 할리우드 작품도 했잖아요.

"마리옹은 정말 최고죠. 나는 죽어도 그녀처럼 잘하진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할리우드와 당장 작업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내가 왜요? 내가 원하는 건 항상 '자유'예요. 가장 중요한 건 언제 어디서나 '노(no)' 할 수 있는 거죠. 게임을 하고 싶진 않다고요. 난 프랑스 여자예요. 동시에 국제적인 배우이기도 하고. 폴란드·이탈리아·한국·아르메니아 등 어디와도 찍을 수 있고, 할리우드는 그중 하나일 뿐이죠. 할리우드가 뭐 별건 가요…."

―40대 정도 되면 더 예뻐지기 위해 성형수술이나 보톡스 정도는 고려해 봤을 텐데요.

"당신이 보기에 제가 성형수술이 필요한가요? 그렇게 늙어 보여요? (웃음) 아직은 안 해봤어요. 저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요. 그래서 담배도 끊고, 다이어트에 좋다고 해서 김치도 많이 먹고 있어요. 물론 스크린에서 제 주름을 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죠. 제 윗세대, 즉 60·70대들이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기 위해 성형하는 건 괜찮다고 봐요. 하지만 나를 비롯해 더 어린 아이들은 본판을 속이지(cheat)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높아졌고, 젊은데 뭘 더 바라죠? 삶은 원래 주름(wrinkle)으로 가득 차 있는 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