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가혹한 대가(代價)

〈제9보〉(115~132)=박영훈은 어릴 때 연구생 자퇴 후 거친 야전(野戰)으로 힘을 길러 입단한 기사. 그런 그가 프로에 와선 난타전보다 정밀한 '고등수학'식 바둑을 주특기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그의 스승 최규병 九단은 "1인자가 되기 위해선 파워가 좀 더 붙어야한다"면서 "조건만 맞으면 이세돌처럼 중국리그서 뛰며 야성(野性)을 키우는 방법도 좋다"고 조언한다.

115를 간과했다는 게 백의 비극이었다. 평소엔 신중하기 그지없는 박영훈이 이날은 딴 사람처럼 집중력을 잃었다는 증거. 그는 흑이 참고도처럼 두어올 것으로만 생각했다. 이 진행이라면 흑도 포위망이라고 주장하기엔 도처가 엷어서 백이 충분히 싸울 수 있다. 124까지 위쪽 대마가 대해(大海) 구경을 한 대가로 우변 대마가 함락돼선 대세가 기울었다.

이미 엎지른 물이긴 하지만 116으론 일단 '가'와 흑 129를 교환, 상중앙 흑 일단의 도강(渡江)을 막아놓은 뒤 122까지를 결행해야 했다는 지적. 123으로 끊어 상중앙 흑이 넘어가선 그나마 시비를 걸 데도 보이지 않는다. 기세를 탄 흑은 숙제로 남겨두었던 좌상귀마저 125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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