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신혼이 지워진 결혼의 맨얼굴

부부는 선한 의도를 갖고 서로 상처 준다. 남편과 아내가 악다구니 쓰며 저주를 퍼부을 때도 그 시초엔 더 행복해지자는 뜻이 있었다. 문제는 선한 것을 추구하는 두 사람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19일 개봉하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결혼이란 제도에 관해 보수적으로, 그러나 벌건 생채기를 드러내며 통찰한 보고서다.

프랭크(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즐릿)은 두 아이를 둔 평범한 중산층 부부다. 교외지역(suburb) 널찍하고 아름다운 집에 산다. 그러나 이 생활은 두 사람에게 권태를 몰고 온다. 더 나은 삶을 꿈꾸던 아내는 "파리로 이사 가서 새로운 삶을 찾자"고 한다. 두 사람이 파리행을 결심할 무렵, 남편은 회사에서 승진 제안을 받고 고민한다.

영화는 남녀 주인공이 파티에서 첫눈에 끌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음 장면은 두 사람이 결혼하고도 한참이 지난 상태다. 샘 멘데스 감독은 이들의 연애와 신혼을 뭉텅 생략하며 본론에 돌진한다. 연애가 스시라면 결혼은 회덮밥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첫 장면에서 바짝 붙어 춤추던 두 사람은 다음 장면에서 멀찍이 떨어져 걷는다.

영화에서 남편은 현실적이고 아내는 이상적이다. 남편은 직장에서 재고관리 일을 한다. 그에겐 결혼 생활도 재고관리와 비슷하다. 아내의 파리행 제안은 '필요한 것'이었다가 '필요 없는 것'으로 분류된다. 그는 지루한 일을 하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 그에게는 잘못이 없다.

아내는 젊은 날 꿈을 잃고 월급쟁이가 돼버린 남편을 연민 한다. 하루 종일 남편 귀가만 기다리는 자신의 삶에도 지쳤다. 파리에 가면 스스로 일자리를 얻어 가족을 부양할 준비가 돼 있다. 남편이 일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1950년대 미국 주부로서는 파격적인 희생이다. 그녀에게도 잘못이 없다.

둘 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부부는 불구대천(不俱戴天) 원수처럼 싸운다. 결혼한 부부이며 아이도 있고 이웃에는 평판이 좋다. 남모르게 싸우는 것 말고는 옵션이 없다. 싸운 뒤 용서를 빈다든가 상냥해진다든가 하는 건 모두 거짓이다. 부부는 양보할 뿐 복종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갈등은 비극으로 끝난다. 친한 척하던 이웃 여자는 그들을 험담한다. 험담을 듣던 이웃 남자는 보청기 볼륨을 줄여 꺼버린다. 다른 부부를 이해하는 척하는 어떤 제3자의 충고도 사실 귀와 입을 닫는 것보다 낫기 어렵다.

윈즐릿의 연기가 디캐프리오보다 훨씬 좋다. 실제 그녀는 기혼이고 그는 결혼한 적 없다. 윈즐릿의 남편은 이 영화를 찍은 멘데스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