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명암(明暗)쌍곡선

〈총보〉(1~173)=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정상급 대결에선 단 한순간의 방심이 패배를 부른다. 세계적 고수(高手)들답게 바둑은 중반까지 수준 높은 공방 속에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나갔다. 흑의 끝없는 강공에 정확히 맞받아치던 백은 32로 상대의 의표를 찔렀고, 여기서 근소하나마 주도권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승부를 서둘렀다. 86으론 무조건 87로 받을 장면. 초조해진 백에게서 다시 96의 악수가 나오더니 기어이 104라는 패착으로 이어졌다. 끈덕진 장고로 빈틈을 안 보이던 박영훈이 이 문제수들은 모두 1~2분 내에 결정했다. 그 뒤에도 116으론 참고도 1로 차단 후 버텨봐야 했는데 그것마저 놓쳤다. 패마(敗魔)가 씌웠다고나 할까.

하지만 박영훈은 LG배 약세 징크스를 털고 처음 4강 고지를 밟았다. 차기(次期)를 위한 일보 전진으로 위안 삼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기 챔프 이세돌은 이 승리로 결승에 진출, 2연패(連覇) 도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무쇠도 뚫을 것 같은 그의 기세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진다. (45…34, 65…59, 173수 끝 흑 불계승, 소비시간 백 2시간 35분, 흑 2시간 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