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포석의 진화(進化)

〈제1보〉(1~19)='모든 생명체는 세대가 거듭할수록 번식 확률을 높여주는 유전적 특성이 확산되며, 활동에 더 적합한 형태로 변모해간다.' 이른바 진화론이다. 이 원리는 생물 분야에 그치지 않고 법학·인류학 등에까지도 훌륭히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바둑도 이에 포함된다. 승부사들의 무한경쟁 속에 끊임없는 수정·보완을 거쳐 새롭고 발전된 포석이 재창조되고 있는 것. 200년 전 태어났던 다윈은 혹시 바둑에도 고수였던 것은 아닐까.

흑 5의 굳힘이 요즘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진화론적으로 말하자면 가장 최신판이다. 종전엔 덤 6집 반의 부담이 커서 5의 귀굳힘보다는 7로 상대 빈 귀에 먼저 걸치는 쪽이 대세였다. 8로 한 칸 더 '가'까지 가지 않은 것도 덤을 의식한 유연한 발상. 지금 경우엔 참고1도 9 이후 확실하게 축머리를 차지한다는 의미도 깔려 있다.

16 이하 18까지는 20여년 전만 해도 백이 실속 없는 정석으로 취급됐지만 요즘엔 유력한 수법으로 거듭 태어났다. 역시 패러다임 변화가 가져 온 진화(進化)다. 만약 백이 16으로 '나'에 협공해 오면 흑은 참고2도처럼 변신했을 것이다. 이 경우 미리 놓여있는 △는 중복(重複)혐의를 피할 수 없다. 19까지 일단락된 이후 백의 다음 착점은 어디가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