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이냐, 구리(古力)냐. 세계 바둑 결승전 사상 최고 빅 매치로 꼽히는 둘 간의 대결이 다가왔다. 수년 째 한국과 중국 두 나라 톱 랭커로 군림 중인 두 기사는 23일부터 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패권을 놓고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에서 3판 2선승제로 자웅을 겨룬다.
이세돌과 구리는 83년 생 동갑으로 프로에도 똑같이 12세 때 뛰어들었다. 이세돌은 2연속 우승을 노리는 LG배를 비롯해 삼성화재배와 TV아시아선수권을, 구리는 도요타덴소배 춘란배 후지쓰배를 각각 보유 중이다. 현역 3관왕끼리 결승에서 맞대결 하는 것은 세계바둑대회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두 기사는 LG배 결승 돌입 나흘 전인 19일 한 차례 ‘리허설’을 가졌다. 지난 19일 상하이에서 벌어진 제10회 농심배 국가단체전에서 격돌, 이세돌이 구리를 꺾고 한국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 판의 결과는 이번 LG배 패권다툼에 작지 않은 심리적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세돌은 승리 후 “구리는 초반 감각이 뛰어나지만 분명 약점이 있다”면서 이번 LG배 결승에서 그것을 이용하겠다고 했다. 한 마디로 기선을 잡은 모습이다.
반면 구리는 우세했던 바둑을 역전패, 충격을 받은데다 자국 팬들의 지탄까지 쏠리자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농심배 최종국 종료 후 인터뷰에서 구리는 “너무도 멍청한 바둑이었다.
초읽기에 쫓기며 많은 실수가 나왔다. LG배 때는 컨디션 조절과 함께 시간 안배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역대 농심배에서 총 5국을 두어 1승밖에 올리지 못한 데 대해서도 “팬들에게 사과한다”고 했다.
그 대국 결과 둘 간의 통산전적 역시 균형이 깨졌다. 중국리그 맞대결을 포함해 둘은 쌍방 7승 7패로 호각을 이루고 있었으나 이제는 이세돌이 8승 7패로 한걸음 앞서나가게 됐다. 이세돌은 일단 자신감이 붙고, 구리는 반대로 부담감이 커졌다고 볼 때 이번 LG배 결승은 이세돌이 유리해졌다는 게 한 중 양국의 분위기다.
하지만 그 판의 결과가 절대적인 지표는 물론 아니다. 무엇보다 LG배는 1인당 3시간의 정통 방식인데 비해 농심배는 1시간짜리 준 속기전이다. 제한시간이 얼마짜리냐에 따라 기사들은 전혀 다른 ‘호흡법’으로 대국에 임한다.
이세돌은 지난 주 중국으로 출국하기 전 인터뷰에서 “농심배 승패가 기세에 약간의 영향은 주겠지만 진짜 우열은 LG배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고 했었다. 구리 역시 본격무대 격인 LG배에서 나흘 전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농심배가 예정보다 하루 앞서 끝나는 바람에 이세돌을 비롯한 한국 팀 일행도 하루가 앞당겨진 20일 귀국했다. 이세돌은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하며 결전에 대비했다. 구리와 중국 취재진 4명, 구리의 어머니 장중쉰(張中遜·54)씨 등 중국 선수단은 21일 오후 4시 한국에 도착했다.
구리 모자는 한국기원 근처 소규모 호텔 방을 잡아 함께 하루를 묵은 뒤 22일 한국 선수단과 함께 대절 버스 편으로 대국 현장인 백담사를 향해 출발할 예정이다. 구리의 모친 장중쉰씨는 대국기간 동안엔 아들과 별도의 방을 쓰게 된다. 구리는 이날 인천공항 도착 후 중국 관영 CCTV 인터뷰를 위해 여의도 KBS에도 들렀다.
LG배 세계기왕전은 연례 국제대회로는 최고액인 2억5000만 원의 우승상금, 제한시간, 대회방식 등 모든 면에서 최고권위를 인정 받고 있다. 조선일보사 주최, LG그룹 협찬으로 치러질 이번 결승전은 23일(1국)과 25일(2국) 벌어지며, 1대1이 될 경우 26일 3국으로 이어진다. 매 결승대국은 오전 10시부터 조선닷컴(www.chosun.com)에서 실황 중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