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질주" "우릴 개로 비하" 둘로 갈린 인도

하지만 타페시와르 비시와카르마(Vishwakarma) 인도 빈민가 주민연합회 사무국장은 "영화 제작자들이 영화상을 타려고 빈민가를 구경거리로 만드는 등 상품화에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인도 출신 영화평론가인 암레시 신하(Sinha) 뉴욕대 겸임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대한 항의 시위는 인도의 힌두교 근본주의와 무슬림 근본주의 정치 세력이 고의적으로 선동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도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빈민들의 반(反) 서구 감정을 선거에 이용하기 위해 이 영화의 제목을 꼬투리 잡았다는 것이다.

아시아 최대의 빈민가인 인도 뭄바이 다라비 지역을 조명한 저예산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가 22일(현지시각)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감독상 등 8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 영화의 주제 음악을 작곡한 인도인 음악가 A. R. 라만(Rahman)은 아카데미 작곡상과 주제가상을 함께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정작 인도에서는 이 영화에 대해 환영과 반대의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는 실제 인도 빈민가 출신의 소년·소녀 배우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이 영화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고, 할리우드의 시상식장에서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인도 언론들도 "인도가 오스카에서 꿈의 질주를 펼쳤다"며 환영했다.

그러나 인도 동북부 비하르주의 주도 파트나에서는 지난달 27일 빈민가 주민 수백명이 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난입해 포스터를 찢는 등 과격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시상식 전날인 22일에도 이 영화의 감독인 대니 보일(Boyle)의 사진을 불태우는 시위를 벌였다고 영국 ITV 방송이 보도했다. 주민들은 이 영화가 자신들을 '개'로 비하했다고 주장했다. 작곡가 라만도 빈민가 주민들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고, 뭄바이 등 인도 곳곳에서 이 영화에 대한 상영 금지 소송이 줄을 이었다.

사실 영화 내용은 빈민가 주민에 대한 비하와는 거리가 멀다. 영화는 인도의 빈민가에 사는 18세 고아 소년이 막대한 상금이 걸려 있는 퀴즈쇼의 문제를 척척 맞히며 결선에 오르자, 이를 의심한 경찰이 소년을 조사해 그 비밀을 밝히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경찰은 소년을 체포한 뒤 "너 같은 '슬럼독'이 어떻게 그 어려운 문제를 맞힐 수 있지?"라고 묻는다. 그러나 소년의 비밀이 빈민가의 척박한 삶과 그 속에서 자연스레 터득한 지혜에 있다는 사실이 차츰 밝혀지면서 경찰도 감동을 받는다. 미 뉴욕포스트는 "우리가 최고라고 뽑은 영화들 중 최고"라고 평했다.